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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 저자 이수명|문학과지성사 |2018.06.25
믿고 보는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이다. <문학동네>, <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믿고 보는 시집 출판사이다. 민음사는 특수문자가 난무해 읽거나 필사하기 힘든 현대시가 많아 나와 맞지 않는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시집의 표지가 민초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민초단이기에 마음에 든다.
큰일이다. 이 시집도 통째로 필사하고 싶을 만큼 괜찮은 시집이다.
<물류창고>라는 제목의 시가 번호가 매겨지지 않고 1부에서 다른 시들과 뒤섞여 계속 반복한다. 특이한 유형의 구성이다. 시인이 물류창고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시들이 물류보단 인간들을 모아둔 창고처럼 보인다만.
시집보다는 소설집을 읽는 느낌이다. 시들이 대체로 한국의 단편 소설들 같다.
역시 문학과지성사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기대 이상이다. 시인의 이메일이 적혀 있지 않은데 직접 문학과지성사에 이메일을 보내 좋은 시집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진다. 전에 읽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원하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시집도 수록된 시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이것도 그렇다. 그래서 필사를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읽다 보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도 물류창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시 안에 쓰인 수많은 시어 중 하나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시집을 읽으며 민초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시와 뒤섞이는 착각에 빠진다. 시와 난교하는 느낌이다. 하고 싶다. 싸고 싶다. 원고 자료 조사와 시에 취해 한 달 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집 감상으로 돌아오자면, 시인이 시보다는, 그리고 운문보다는 산문에 더 재능이 있어 보인다. 산문 같은 시들도 적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시집에 수록된 게 아니었다면 산문으로 오해했으리라.
일기나 수필처럼 보이는 시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운문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시들로 채워진 시집이다. 나는 전부터 여러 사유로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주장했는데, 이 시집도 운문과 산문, 시와 소설의 경계를 뛰어넘어 한 편의 ‘글’ 자체를 추구하며 ‘작품’으로써 충실한 것 같다. 배우고 싶은 필력을 갖춘 시인이다.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이런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타야 한다.
2부부터는 <물류창고>라는 제목의 시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시들이 꿈틀거린다.
그나저나 필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류창고>라는 동명의 시들이 워낙 많아서 남이 필사해 블로그 등에 올린 시들을 정리하기에 어려울 듯하다. 이 시집의 유일한 단점이자 특출난 부분이다.
읽어도 읽어도 색다르고 새롭게 전달되는 마법 같은 시집이다. 딱히 떠오를 만큼 좋은 시가 있다기보다는 시집 전체가 내 안에 들어와 주문을 거는 기분이다. 관념적이다.
<하양 위로>라는 시의 하양이 자꾸만 고양이로 연상된다. 귀여운 고양이. 그러나 고양이는 도도하게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흑흑.
일반적인 다른 시집들과 달리 자연을 묘사한 시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묘사한 시가 많다. 다만 사람 사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쓴 느낌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른 의미로 시에서 잘 표현했다. 내게 많은 영감을 준 시집이었다. 나도 물류창고에 갇혀 글만 쓰고 싶다.
이수명 시인 진짜 잘 쓰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