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고 소련이 건국된 이후에도 톨스토이는 제국시대의 귀족 출신 문호였음에도 오히려 더 높이 평가받는 기묘한 현상이 생겼다. 톨스토이가 특히 소련 체제에서 높이 평가받은 이유에는 농민의 현실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공산 세력의 '프롤레타리아 정신'과 연결된다는 점도 있었다. 한 예로 블라디미르 레닌은 "톨스토이 이전에는 진정한 농민의 모습이란 없었다"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다만 톨스토이만 이런 높은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고 러시아의 문학 애호 경향은 소련에서도 유유히 이어져서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안톤 체호프 등의 대부분의 문호들은 소련에서도 존경을 받았다.
소련에서는 (적어도 문학에서 만큼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대대적인 문화탄압이나 과거부정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저 구체제적 경향이 농후한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비판받은 정도였다.[25] 평가 절하된 인물은 혁명 운동을 악령으로 디스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정도이고 평가절하되었지만 천하의 소련도 차마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성은 부정하지는 않았다. 죄와 벌을 비롯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금지되지 않았고 스탈린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으며[26]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근거로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의 보복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도 흐루쇼프 시절에 복권되었다. 오히려 러시아 문학의 전통은, 막심 고리키, 알렉산드르 헤르첸,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을 유년 시절부터 읽고 열광하며 혁명과 인민 해방의 꿈을 꾸며 자라 결국 나라를 얻게 된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이오시프 스탈린 등 볼셰비키의 지도자들을 통해 소련 체제의 성립과 연결되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도끼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던 도스토옙스키를 훗날 볼셰비키 혁명으로 세워진 소련이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그래서 레프 톨스토이와 달리 그는 절하당하고 후손들에게 주어지던 연금도 끊겼다. 하지만 소설들은 워낙 뛰어났던지라 다행히 금서 지정을 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련을 지지하던 작가 대다수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강력하게 지지하여 금서 지정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죄와 벌은 1930년대에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스탈린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좋아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근거로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의 보복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이오시프 스탈린 사후 1950년대 이후 장편을 기반으로 영상화가 많이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은 소련 치하에서도 위대한 작가로 재평가되면서 연금도 다시 돌려받기 시작했고, 후손으로써의 저작권과 판권도 인정받아서 다시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
지주로 몰려서 숙청당한 레빈 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