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독붕이들은 혹시 중국 현대시는 관심없음???
오늘 컴퓨터 뒤적이다가 학교다닐 때 과제한 게 있길래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중국 시인 하나 소개해본다.
중국 70~80년대 신시기 문학을 이끌었던 몽롱시파의 대표 시인인데,
잘 모르는 독붕이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요 사건 이후로
요 사건 전후시기의 문학이라고 보면 됨.
1970년대 문화 대혁명이 끝난 후의 문학을 ‘신시기(新時期) 문학’이라 칭하는데, 독붕이들도 알다시피 온갖 기상천외한 병크로 나라가 아주 개판이 된 중국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그동안의 참혹성과 상처를 고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남.
소설에서는 '상흔문학(伤痕文学)', '반성문학(反思文学)', '뿌리찾기문학(寻根文学)' 사조가, 시에서는 몽롱시파(朦胧诗派)가 등장하게 되는데,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뼈져리게 느낀 직후인 데다가 1980년대 들어서 천안문 사태를 대표하는 폭압적 정치와 정경유착으로 인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빡이 돌대로 돈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상이 일어남. 수팅(舒婷), 꾸청(顾城), 장허(江河), 양롄(杨炼), 망크(芒克), 하이즈(海子) 등의 시인으로 대표되는 몽롱시파는 은유나 상징 등의 서정적 시적 기법을 통해 당대 어두운 현실을 비판하였음.
지금 소개할 몽롱시파의 대표 시인이 바로
이 사람임.
베이다오는 1949년 출생으로 중국 민주촉진회(1945년 상하이 지식인들이 문화와 교육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단체) 조직원이었던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 사이의 천주교 가정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어린시절을 보냄. 그러다 문화대혁명이 발발하고 홍위병 운동에 참여했다가 발전소 건설을 위한 철공반에 배치되어 6년동안 공사판에서 일하게 됨. 문혁 기간 동안 절친 워뤄커가 문화대혁명 주역 4인방에게 살해당하고 여동생이 사고로 죽는 등의 일을 겪은 후 1978년 『오늘』이라는 지하간행물 잡지를 출간하여 기존의 정치 선전시와는 다른 새로운 문예사조를 연 인물임.
베이다오는 <오늘> 창간호의 「독자들께(致读者)」에서 "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멀기만 하니, 우리 세대에게는 오늘, 오늘만 있을 뿐이다."라고 고함. 당대 현실을 어떻게 비판했길래 이렇게 떠드냐고? 우선 시 스타일을 알아보기 위해 몇몇 부분을 발췌해 왔음.
「반역자 (叛逆者)」 -2연
겉옷을 걸친 의자가
동방에 앉아, 태양은 그의 머리다
그는 구름 하나를 뚫고 말하길:
여기는 역사의 종결이네
모든 신들아 물러나거라, 사당을 걸어 잠그거라
너는 불과 하나의
소리를 잃은 상형 문자일 뿐
「결말 혹은 시작( 结局或开始)」 3연
태양의 명분을 내걸어
어둠이 공개적으로 약탈하며
침묵은 여전히 동방의 이야기이다
인민들은 오래된 벽화에서
묵묵히 영생하고
묵묵히 죽어가고
「프라하 (布拉格)」
카프카의 어린 시절이 광장을 가로질렀다
꿈이 무단결석한다, 꿈은
구름 속에 앉아 있는 무서운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있었고, 계승권이 있었다
쥐 한 마리가 황궁의 회랑에서 어슬렁거린다
그림자 같은 시종들이 앞뒤 떼를 지어 둘러싼다
베이다오의 시에는 아버지, 태양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많이 나옴. 이 표현들이 누구를 뜻하는 지는 다들 알겠지??
다음은 베이다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회답(回答) 전문임. 이 시는 1976년 1차 천안문 사건 때 북경에 민주벽에 대자보로 붙은 적이 있음.
비열함은 비열한 사람의 통행증,
고상함은 고상한 사람의 묘비명.
보아라, 저 도금한 하늘에,
죽은 자의 거꾸로 굽은 그림자가 가득 휘날린다.
빙하기가 지나갔는데,
왜 도처에는 모두 얼음인가?
희망봉은 발견되었는데,
왜 사해 死海에는 수많은 배들이 서로 다투는가?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단지 종이와 밧줄과 그림자와
심판에 앞서
그 판결을 읽기 위한 소리만 가져왔다.
너에게 알리노니, 세계여,
난―믿―지―않―는―다!
너의 발 아래 천 명의 도전자가 있더라도,
나를 천한 번째 도전자로 삼아다오.
나는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천둥의 메아리를 믿지 않는다.
나는 꿈이 가짜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죽으면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바다가 제방을 무너뜨린다면,
모든 쓴 물을 내 마음 속에 들이부으리
만약 땅이 솟아오른다면,
인류에게 다시 생존의 봉우리를 선택하게 하리.
새로운 전기와 반짝이는 별들이,
막힘 없는 하늘에 가득 수놓았다,
그것은 오천 년의 상형문자,
그것은 미래인들이 응시하는 눈길.
그렇다면 꽤 수위 높은 비판을 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시인의 안위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임. 그 당시에 이런 걸 발표해도 되나? 천안문 당한 거 아냐? 혹시 유명해져서 중국에서도 함부로 못 건드린건가???
"안뇽??"
"어....? 망했네?"
어림없지ㅋ 망명엔딩!
1989년 중국의 대표 반체제 인사인 웨이징성의 투옥 반대 서명 작업에 참여한 후 결국 망명길에 오르면서 7개국인가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생활이 시작됨...
초기의 비장한 저항시와는 달리 중기시부터는 망명과 방랑,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주된 소재가 됨. 다음은 1989년 2차 천안문 사건의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기 직전에 베를린에서 쓴 시임.
「종소리(钟声)」
폭력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지붕의 기와가 축축하다
십리 폭풍에 지칠 줄 모르는 주인이 있다
침묵의 종을 치는 사람
열어젖힌 시간의 막 幕
찢어져서, 온 하늘에 나부낀다
하루하루 날짜들이 쉬지 않고 충돌한다
배가 상륙한다
대설 大雪 위에서 미끄러진다
면양 한 마리가 먼 곳을 응시한다
면양의 공허한 눈빛은 평화 같다
만물이 다시 명명되는데
티끌세상의 귀는
위험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죽음의 종소리이다
먼 타국에서 공허한 눈빛으로 조국의 사태를 응시하는 자신을 면양에 빗대어 표현함.
결국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결말은 죽음의 종소리가 되어버림...
「고향의 소리 (鄕音),
나는 거울을 보고 중국어로 말한다
공원에는 자신의 겨울이 있다
나는 음악을 튼다
겨울에는 파리가 없다
나는 한가로이 커피를 끓이고 있다
파리는 무엇이 조국인지 모른다
나는 설탕을 조금 더 넣었다
조국은 일종의 고향의 소리이다
나는 전화선의 다른 쪽 끝에서
나의 공포를 들었다
문장도 유려하고 그 특유의 은유 표현이 너무 좋음... 뭔가 이수명 시인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함. 몇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자에 선정되기도 했다는데 망명후에도 중국어로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면서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중국현대문학은 찍먹수준이라 어디가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중국 소설가는 위화, 시인은 베이다오를 제일 좋아함. 허삼관매혈기나 인생 등은 많이 들어봤지?? 문혁이후 중국 시대상을 키워드 주제로 풀어낸 위화의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도 추천함. 아마 중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됐다고 들은 것 같음...
과제로 베이다오를 처음 접하고 너무 좋아서 언제 한 번 독갤에도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글재주가 없어서 잘 전달이 되었는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베이다오 시 중에 마음에 드는 문구 몇 줄 쓰고 간다.
사실 베이다오가 어떤 마음으로 시들을 썼는지는 잘 체감이 안 감.
그럼에도 언제나 오늘, 새벽이라는 단어는 가슴 떨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음.
내일은, 안돼
내일은 밤의 저편에 있지 않아
희망을 지닌 자는, 누구나 죄인
그러니 밤새 일어난 이야기는
그날 밤 안에 끝내주게나
<내일은, 안돼> 중에서
새벽이 제게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 순간을 공개하도록 말입니다
누가 심연의 문을 닫을 수 있겠습니까
<고별사> 중에서
댁은 독갤의 보배요! - dc App
최후의 시각이 도래했는지 모르겠다/나는 유언을 남기지 않겠소/글을 남길 뿐이오, 내 어머니께/나는 결코 영웅이 아니오/영웅 없는 시대에서/나는 그저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오
김수영이랑 비교해도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