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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의 지경, 열반의 상태, 세상과 하나 됨, 세상이 나인 상태
뇌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정신적 작용이 꺼진 상태
꼭 그것을 추구해야만, 욕망과 분노를 죽여야만 그 상태에 도달 할 수 있는가?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정신적 작용과 욕망과 분노를 느끼는 정신의 활성 상태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느꼈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정신적 작용을 끄려고 노력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욕망과 분노,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를 하는 인식이 있어야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지않고 다른 상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무한한 우주라는 특성, 모든 시간대의 존재를 뛰어넘어
지금 여기의 나, 그리고 우리 지구. 라는 의식을 떠올렸을 때.
나는 개개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이 의식으로 자기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기능을 꺼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나는 원하고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내가 느끼는 불쾌한 경미한 고통은 아세트아미노펜으로, 내가 느끼는 불쾌한 분노와 부적절한 충동은 팔리페리돈, 퀘티아핀으로 조절되고있다.
무아란 시공간의 영원함과 전체적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것 조차 미망delusion이며
단지 우리가 자아에 대해 사유하고 인식하는 기능을 잠시 끄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불교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바로는 불교의 최종적인 목표는 해탈한 사람 붓다가 되는 것인데 '자기'라는 존재는 세상의 사물은 왜곡해서 보게하고,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만드는 원천임. 네가 말하는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지않고 다른 상태를 추구하는 것"자체가 불교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함.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고락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함
내가 보기에 열반이라는 것이 자아의 기능을 끄고 키고 이런 능력을 얻는다는 문제가 아님. 노력해서 남들이 도달 못할 어떤 능력 또는 정신의 고양을 얻는다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추구하는 것임. 이 세상을 바로 보는 첫단계가 데카르트식 '나' 또는 '자아'가 환상임을 깨닫는 거고 그 사실을 기반으로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 어떤 시각이나 진리를 접하고 그 전과 세상이 다르게 파악 되듯이 (진화론, 양자역학, 역사) 불교에서는 '무아'를 인지하는 것이 그 역할을 하게됨
짧게 요약하면 능력의 습득이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함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