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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굴러다니던 단편집을 읽어보았다.
박경리의 추모서를 읽은 사람이기에 그 존재가 내게 각인되었으며
검색으로써 굴지의 여성작가임을 알았지만,
나는 '도둑맞은 가난' 이외에 그녀의 책을 읽은 적 없으며, 그 도둑맞은 가난마저 수능 문제 풀다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일이 지났음에도 잊혀지지 않고, 또한 시대가 정말로 가난을 도둑질하고 있기에 다시 기억이 선명해졌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통찰을 보이니 대단한 작가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하던 중에 읽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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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은 열림원 판본으로
무려 논술대비용으로 나온 책이다.
엄마의 말뚝 외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외 기타등등 5개쯤 되는 70년대 단편이 실려 있다.
엄마의 말뚝은 다분히 자전적인 내용이기에 넘어가고(재미있었다)
나머지 단편들의 공통점은
'개인의 인간성을 파멸시키는 은근한 현대의 위협'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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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망가진 인간들을 혐오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왜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담담히 묘사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드러내고, 또한 현대라는 괴물이 어떻게 그들을 이기적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우습게도, 그들의 이기성은 그들의 선함에서 비롯된다. '함께 살아가고자 하기에' 그들의 이기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작가는 그들을 긍정한다.
함꼐 살아가고자 하기에 이기성이 드러난다는 의미는,
먹을 것이 한정되어 있는 세상이 있다고 치면,
그 먹을 것을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먹어치우는 게 이기성의 극단, 즉 이타성을 가장한 이기성이 가장 역겨운 것이다.(아마 도둑맞은 가난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만큼 먹을 것이다'하고 작가의 등장인물들은 선언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먹을 것이 한정되어 있는 세상'이 바로 현대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좆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착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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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글빨.
그렇게 압권도 아니오, 섬세함의 극단도 아니오, 파격적이지도, 만연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중용으로 적절한 어휘로 적절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권투선수로 치면 완벽한 기본기와 적절한 파워를 가진 완벽한 테크니션 아웃사이더다. 승률이 가장 높은.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분명 7-80년대의 문장으로는 최고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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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상적인 얘기를 넘어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작중 주인공은 산부인과 여자 의사로
동란 중에 겁탈당해 낙태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대한 강력한 증오를 가지고
오직 본인의 의술을 돈벌이 수단으로서만 활용해 마침내 은퇴를 앞두고 있는 여자이다.
어쨰서 남자가 아닌 '인간'이냐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완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책에 이렇게 추상적인 헛소리가 나오진 않지만, 대충 그런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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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하지 않기 위해서 좀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면(위의 -4-항목은 책 15p 읽으면 나오는 내용)
여러 장치가 나와
그녀의 심리를 암시하고,
경험적이기에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밑바닥 인생들의 생생한 재현 속에서
인물들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태반을 소주와 함께 먹으며)선생님~ 어떻게 해야 애가 안들어서죠..??'
'지랄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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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작품과 다르게 이 단편만 언급한 이유는
이 단편이 아마도 작가의 심혈을 기울인 역작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안 찾아봄)
또한 다른 단편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가의 답안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읽어볼 만하다. 아니,
읽어두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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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말하기엔 스포일러가 되니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80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다분히 실존적이다.
실존이란 무엇인가? 내가 읽었던 책에선
자신이 믿었던 세상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 양심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실존이라 하였다('위기'와 '양심'만 정확히 언급됐다.)
양심이란 법에서 쓰이는 의미가 그리스의 원어 그대로이다. '요걸 거부하면 인생 제대로 못 살 거 같은 것'
이 의미는, 실존이란 자신이 선택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부처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게 아니고 수행자의 삶이 그가 선택한 삶이다.
40년 전, 다분히 경험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암울한 시대에도 이러한 내용을 쓸 수 있는 작가라니
박완서는 분명 비범한 작가임이 틀림없다.
경탄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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