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하잖아.
글자만 있으니까, 그래서 독자 해석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다고.
근데 오히려 책은 그 상황을 활자로 다 표현 해 주니까
좋은지 나쁜지 다 드러나는거 아님?, 미리 정해져 있는거잖아.
가령 A라는 인물의 표정이 심드렁하도 추접스러웠다.
이렇게 묘사되어 있으면,
독자는 활자 그대로 심드렁하고 추접스럽다고 받아 드리겠지.
물론 장면은 상상 할 수 있지만, 그 감정 자체는 다 알려 주는 꼴이잖아?
반면에,
영화나 영상매체는
연기자가 심드렁하고 추접한 표정을 지었다고 해도, 그걸 의도 했다고 가정해도.
그걸 본 관객 입장에선 다르게 해석 할 수 있지.
표정이 우울해 보인다거나.. 상황파악을 못한 표정같다거나.
아무튼 이걸 간명하게 질문 할 방법을 몰라서 길게 써봤는데
너넨 어떻게 생각함?
글자만 있으니까, 그래서 독자 해석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다고.
근데 오히려 책은 그 상황을 활자로 다 표현 해 주니까
좋은지 나쁜지 다 드러나는거 아님?, 미리 정해져 있는거잖아.
가령 A라는 인물의 표정이 심드렁하도 추접스러웠다.
이렇게 묘사되어 있으면,
독자는 활자 그대로 심드렁하고 추접스럽다고 받아 드리겠지.
물론 장면은 상상 할 수 있지만, 그 감정 자체는 다 알려 주는 꼴이잖아?
반면에,
영화나 영상매체는
연기자가 심드렁하고 추접한 표정을 지었다고 해도, 그걸 의도 했다고 가정해도.
그걸 본 관객 입장에선 다르게 해석 할 수 있지.
표정이 우울해 보인다거나.. 상황파악을 못한 표정같다거나.
아무튼 이걸 간명하게 질문 할 방법을 몰라서 길게 써봤는데
너넨 어떻게 생각함?
이것도 결국 시점(1인칭 3인칭 전지적 제한적 그런 거, 의외로 영화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임)이나 편집(소설이나 영화 속 장면들은 현실을 그대로 담은 게 아니고 창작자의 의도에 맞게 선택하고 편집하고 변형한 거니까)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고, 어느 매체에서든 행간을 읽어내려는 노오력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긴 한데, 그래도 언어가 맥락에 더 많이 의존하긴 함
실제로 영상은 감각적이라 굳이 영상문법을 습득하지 않아도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언어는 구어든 문어든 간에 화자나 텍스트에 대한 배경지식에 의존해 내용을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꼭 어휘력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이런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글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는 경우가 많음.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꼭 글쓴이의 시시콜콜한 가정사까지 탐구해가며 글쓴이가 의도한대로 글을 읽어내야 하는 건 아님. 하지만 이런 텍스트의 '맥락'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배경지식을 통해 구성해낸다는 게 중요함. 왜냐하면 사람은 배경지식이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있고, 언어도 하나의 렌즈에 불과하기 때문임.
개념이나 단어는 그 하나 하나가 과잉일반화된 범주이거나 집합 개념 이잖아 가령 '붉은 색'이라고 하면 붉은 색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불러모을 수 있는) 수많은 뉘앙스들(개별체들)의 집합이니까 딱 그만큼만 상상력을 허용하지만 동시에 붉은 색은 푸른색이나 녹색을 배제하니까 제한이자 배제라고 할 수 있겠지. 소설을 영화를 만들었을 때 시각적으로 구현된만큼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컷과 컷사이의 몽타주나 말없이 제시된 이미지들의 빈틈에 끼어들어서시청자 개인이 자기기억을 투사하고 몽상하는 여지까지 없어지는건 아니잖아 눈앞의 어떤 물체나 심상이나 단어든지간에 장애물이면서 동시에 징검다리지. 징검다리가 없으면 수신자가 발신자에 건너가지를 못하는데 일체 메시지도 없는 침묵을 무제한적인 자유의 허용이랄수 있을까
결국 글자로만 전달되는 문학이든 영화든 만화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각자 매체에 걸맞게 상상력을 허용하면서 제한하는 한계가 있는 거고, 창작자가 자기 작업장의 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테크닉에 따라 수용자를 배려하는 생략과 일방적 상세화를 오고 가는 건 아닐까? 너가 문학을 예로 들었으니까 그또한 문학의 한계이면서 문학의 에이젠트들이 스스로를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음
반어법 은유법 이런걸 모르나 딱 정신병자나 가질 의구심에서 비롯된 저능한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