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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면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 이태준은 문장에 있어 교조주의적인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태준은 문장을 위한 문장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춘향전>과 같은 판소리계 문학은 산문보다는 운문에 가까우므로 좋은 문장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나는 이 말에 그다지 동의할 수 없다.
물론 문장 그 자체로만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드는 예시 문장들에는 소설도 있지만 이를 제외한 다양한 산문들도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이 책이 교조주의적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여기서 두 번째 변호를 해보겠다. 이 책은 글쓰기를 강의하는 책이 아니라 언문일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언문일치가 무엇인가? 입말과 글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한문과 이두문을 사용해왔다. 따라서 한글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대한제국 때부터다. 이후 주시경 선생의 한글 개량과 이광수의 <무정> 히트로 인해 언문일치문을 쓰는 작가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태준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아보면, <문장강화>는 다르게 읽힌다. 이 책은 당대의 작가들이 쓴 글들에 대한 비평서이자, 이러한 비평을 통해 올바른 언문일치를 소개하고 동시에 언문일치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선언문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은 맨 마지막 파트만 읽어도 충분하다. 언문일치에 대한 이태준의 생각이 이 파트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
나는 자유주의자이지만, 교조주의만큼은 혐오하고 배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교조주의야말로 먼저 자유를 침해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장강화>를 비판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그 밑에 깔려있는 언문일치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발견한 순간, 어느 정도 반성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맹신하면 안 된다. 이태준의 문장론은 여전히 교조주의적이다.
글을 처음 읽을 때는 작가의 사상이 매우 기울어져 있지 않은 이상 중립적으로 읽어야 한다. 비판하거나 맹신하거나 하는 것은 완독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부디 여러분들은 나처럼 다 읽고 나서 뒤늦게 반성하지 마시기 바란다. 교조주의에 매몰되어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지도 마시기 바란다. 올바른 독서는 사상을 피력하기에 앞서 글을 즐겁게 읽는 것이다.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요즘시대에 맞는 더 좋은 작문책이 많다고 하면서 폄하하더군요. 그리고 문학쪽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보기에 어렵다는 글도 보이더군요.
난 이 책을 작법서의 탈을 쓴 언문일치 선언문이라고 생각함. 그나마 제목에 맞춰보자면 언문일치 비평문?
90년대 고등학생들이 보던 책인데 이게 어렵다고????
대안으로 읽을 책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