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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외톡박이> -뿌리깊은나무

한창기 선생이 1976년 창간한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 <뿌리깊은나무>에 실렸던 동명의 연재 기획 기사를 한데 묶어 출판한 책.


내시, 백정, 각;설이꾼, 기생, 남사당 꼭두쇠.. 등 당시에도 이미 사라져가고 있던, 전통문화의 응달을 지키며 살아온 인물들을

각계의 다양한 필진이 직접 만나 취재한 내용이 실려있는 책이야.


편집자의 말

내시, 백정, 각;설이꾼, 재지기, 장도장, 떠돌이 재인, 무당, 금어, 옹기쟁이, 풍수쟁이, 장돌뱅이, 기생, 머슴, 대장장이, 남사당 꼭두쇠, 쇠거간, 땅꾼, 심메마니...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그런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입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국 역사에 한번도 떳떳하게 얼굴을 내밀 수 없었던 사람들. 규범 문화의 뒷전에서 천대받고 구박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숨겨진 얼굴임을 밝혀줍니다.


칠십년대에 쓰여진 글들인데 구어체의 문장이 요새의 것들과 참 다르게 술술 읽히면서도 깊은 맛이 있고, 짙은 인간미가 묻어나옴.


인상깊었던 꼭지 몇개 소개해

(근데 각;설이 왜 금지어임? 어쩔수 없이 띄어 씀)

<각;설이 마을의 천사들>- 문순태(소설가)

...

또한 각;설이타령은 시원시원해야하고 걸직해야 하며 미끈미끈해야 한다고 말한 김 광진 씨는, 그만 천사 마을을 떠나야겠다고 했다.

이제 각;설이타령으로는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마치 우리럴 다방에 돌아댕기며 십원자리 동전이나 뜯는, 그런 추잡스런 거지들로 생각한다니께요.

그래도 옛날엔 각;설이타령 하나만 제대로 쫙 뽑는다 치면 어디 가서든 환영받고 배 뚜드리가며 실컷 술 밥을 얻어 묵었는디...."

(중략)

타령꾼 행세를 하며 살기에는 그런대로 그 나름대로의 풍류와 멋도 있어 좋으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다면서,

일구어 먹을 밭 한 뙈기만 있어도 걸망을 집어 던져야겠다고 하였다.

(중략)

굶어도 같이 굶고 먹어도 같이 먹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온,

부귀 영화를 하늘에 맡겨 놓고 산다는 천사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 나름대로 지녔던 옛날의 질서가 서서히 무너짐과 함께

특수 사회로서의 폐쇄성도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울타리는 고사하고 골목도 사립문도 없으며 한 마을이 네 집 내 집이 없이 사통 오달로 툭 트인 만큼,

도둑도 없고 누구네 집에서 썩은 갈치 토막만 구어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며 무 조각 하나라도 골고루 나눠 먹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인심이 좋고, 서로서로 믿고 사는 거지 마을 천사들은

그러나 세상에 나가 아귀다툼하며 살아가는 일이 아직은 두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랑 극단과 치마 입은 사내>-이정환(소설가)

...

나는 불쑥 그에게 물었다.

문형! 아니, 문양이라 부를까? 어떻소, 남자라는 걸 내게 보여줄 수 있소?

그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나를 데리고 건물의 모퉁이로 돌아 들어갔다.

거기에는 또한 짓다 만 변소가 있었고 나는 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나와 그는 나란히 서서 오줌발을 쏟아 내었다.

그는 비록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분명히 남자였다.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와 남은 소주잔을 비웠다.

나는 또 물었다.

어떻소,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 어엿한 남자로 살고 싶지 않소?”

, 그래야지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여자 옷을 입고 추는 병춤 덕분에 고단한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인데 꼭 남들처럼 살아야 할까요?”

그는 헤식게 웃으며 나에게 되물어 왔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로 극단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떠나는 건 수지 타산이 안 맞아 그러는데 나 같은 사람도 얼마쯤은 필요한 것 같아요.” 하며 고개를 외로 꼬았다.

(중략)

아저씨, 무얼 그렇게 적어요?”

일곱 살쯤 나 보이는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세미계집애의 물음은 나의 가슴을 겨자처럼 쿡 쏘았다.

일정한 고향을 갖고 자녀들이 안심하게 크고 교육을 받게 하려면 우리 생활 수준이 높아져야겠는데 

그럴 만한 대책이 없으니까 재들도 결국 부모따라 광대가 될 수밖에 없겠죠.”

가수 서 정남 씨가 털어 놓았다.

그때 신사복을 입고 한껏 멋을 낸 한 중년 남자가 나에게 인사를 청해 왔다.

그는 유랑 극단을 오래 따라다닌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김 만용 씨에게 [삼팔선아 가거라]를 한곡 뽑으라고 부탁했다.

거 좋지요. 한곡 뽑으세요.” 나도 따라 말했다.

김만용 씨는 나와 얘기를 나누다 말고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꿈마다 비나이다 꿈마다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쿵작쿵작.”

노래는 슬펐다

그렇지오늘은 이 고장 내일은 저 고장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노래와 춤을 벗삼아 인생의 희비극을 엮어내는 그들 슬픈 광대는 

오늘의 화려한 대중 문화권에서 밀려나 잃어 버린 향수를 찾아 흘러가는 부평초였다.

그러나 부평초의 늙은 꼭두각시는 말했다.

낸들 집이 그립지 않고, 고향 찾아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겠소마는 난 이냥 떠돌아다닐 겁니다. 이냥 좋아요.

무덤인들 생각해 보겠소? 그냥 떠돌아 다니다 뼈는 가루를 내어 흩뿌리는 거죠. 한 고장에 뼈를 묻으면 죽어서 혼백이 떠돌 수 없어요.

나팔 소리에 따라 원도 한도 없이 떠돌 참입니다.”

오늘은 거의 잊혀져 있는 유랑 극단, 서민들의 애환을 다래 주던 유랑 극단, 내 일은 어느 두메 산골에서 어떤 꽃으로 피어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