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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흐릿해진 기억의 파편을 그러모아 독후감을 쓴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다. 빛바랜 추억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어떤 추억은 시간에 둥글어져 호화롭다. 초등학생 시절 읽은 '책 먹는 여우'가 그런 동화다. 어느 시절에 돌아봐도 사랑스러운 동화. 우리를 닮은 여우가 사랑스러운 우화. 그래서 이 독후감을 쓴다. 돌아보기 위해서.

여우는 책을 사랑한다. 여우는 책을 읽고, 소금을 톡톡, 후추를 툭툭 뿌려서 맛있게 삼킨다. 독서는 구멍 뚫린 둑과 같아서, 물을 길어넣을수록 구멍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쉽게 말해서, 배고프다. 배곯는 여우는 전당포에 가구를 팔아 책을 사지만, 생계를 전부 전당포에 맡긴 여우는 굶어간다. 다행히, 여우가 생존을 위해 팔아넘길 것이 하나는 남아있었다. 바로 자신의 양심이다.

여우는 생존을 위해서 죄를 짓는다. 도서관의 책을 훔쳐먹다 쫓겨나고, 단골 서점의 책을 훔치기도 한다. 죄의 끝은 벌이라, 여우는 결국 책을 금지당한 채 감옥에 갇히고 만다.

다행히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여우는 감옥에서 스스로 책을 써서 자급자족하고, 그 책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출판된 책에는 소금과 후추가 부록으로 붙어있었다고. 배부른 여우를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독서란 단순한 교양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일테니.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탐보다 질이 나쁘다. 책탐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주린 배를 붙잡고는 문득 떠올린다. 내가 직접 책을 써보고 싶다고.

펜을 붙잡고, 흰 종이에 검은 글자를 채우고, 소금 톡톡, 후추 툭툭 뿌린 여우는 스스로가 쓴 글을 꿀꺽, 삼키고는 말한다.


"우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