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위너 유진 위그너가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을 비교한 글이 있는 재미있는 책이 있어서 부분 번역을 해봤다.
한국에서는 90년대에 <위그너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던 모양인데 지금은 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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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똑똑한 사람들과 정말 많이 알고 지냈다. 나는 막스 플랑크, 막스 폰 라우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친했다.
폴 디랙은 내 매제다.(역자: 위그너 여동생의 남편) 실라르드 레오, 에드워드 텔러와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도 친한 친구였다.
나는 가장 똑똑한 젊은 과학자들과 많이 알고 지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폰 노이만만큼 빠르고 예리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그렇게 말한 적도 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폰 노이만을 만난다면 그의 두뇌가 얼마나 빠르고 강력한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수학적 문제들의 초기 측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복잡성을 이해했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가장 복잡한 과학적 문제의 세부 사항들을 깊이 다뤘다. 그 모든 것을 그는 빠짐없이 기억했다.
그의 두뇌는 1000분의 1인치까지 정확하게 맞물리도록 만든 기어로 이루어진 완벽한 기계처럼 보였다.
수학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기도 했지만 그는 다재다능했다. 아마 가정교사에게서 영어를 배웠을 텐데, 그는 헝가리어만큼 영어를 잘했다.
마침내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도 유창하게 했다.
그러나 폰 노이만의 지성이 나를 오싹하게 만든 적은 없었다. 그는 나보다 분명 수학을 더 잘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나보다 수학을 잘했다.
나는 수학 천재가 아니었다. 나는 폰 노이만보다 물리학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상이나 장학금, 직위를 두고 폰 노이만과 경쟁하지 않았다.
우리가 우호적으로 서로를 설득하려 한 것은 경쟁이 아니었다.”
(Eugene Paul Wigner, Andrew Szanton, The Recollections of Eugene P. Wigner as told to An- drew Szanton. Springer. 1992, pp. 58-59.)
"아인슈타인의 교우관계는 과거 동료와 친구들로 이뤄진 소규모 그룹으로 국한됐다. 나는 운이 좋아서 거기에 속할 수 있었다.
프린스턴에서 20년 이상 아인슈타인과 알고 지냈다.
당시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었긴 하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수준으로 사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인슈타인의 흥미를 끌만한 여러 요소들이 있었다. 나는 물리학자이자 유럽인이었고
베를린에서의 그의 빛나는 과거에 대한 작은 연결고리였으며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고 독일어를 아주 정확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나는 걷는 것을 매우 즐겼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가 아인슈타인만큼이나 물리학을 사랑했던 몇 안 되는 그의 지인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칭과 불변의 원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믿음을 나는 소중히 여겼고 그에게 그렇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자주 함께 걸으며 물리학의 경이로운 것들과 성가신 것들에 대해 논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스갯소리를 정식으로 하진 않았지만 그의 생동감 넘치는 유머는 그의 발상과 과학의 매우 전문적인 부분까지 물들였다.
아인슈타인의 친구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특권 중 하나는 아인슈타인이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는 그의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에 대해
그가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아이디어를 발표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그가 선호하는 더 큰 이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무른 아이디어를 발표하지 않은 적도 많다.
예를 들어, 그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운동량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guiding field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한 적이 없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재였고, 내 지인들은 “너는 아인슈타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잖아. 그는 완벽한 두뇌를 갖고 있지?”라고 묻곤 했다.
글쎄, 나는 “완벽한 두뇌”가 뭘 말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두뇌가 매우 인간적이고 결함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폰 노이만보다 항등식을 유도하는 데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적어도 1933년 이후에는 그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물리학의 세부 사항들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에드워드 텔러와 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물리학 문제의 세부 사항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렇지 않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아인슈타인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근본 원리를 찾은 다음 표현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해는 폰 노이만의 것보다도 더 깊었다. 그의 발상은 폰 노이만의 것보다 더 통찰력 있고 독창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놀라운 주장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발명에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 그의 가장 위대한 발명 두 가지는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그 모든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폰 노이만은 그 정도로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떠한 현대 물리학자들도 내놓지 못한 그런 독창적인 것 말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의 감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나이가 들고서는 프린스턴에서 멀리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가까운 호수에서 애용하는 그의 배를 타곤 했다.
그리고 Mercer Road에 있는 집에서 Institute for Advanced Study까지 매일 걸어 다녔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나는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인슈타인은 종종 내게 외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외로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외로움에 대한 잘 알려진 치료법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오랜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떠는 것 등을 아인슈타인은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남한테 도움받는 것을 싫어하는 태생적으로 고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Ibid. pp. 169-170.)
연산속도야 폰 노이만이 더 빨라도 20세기 과학자 GOAT은 누구한테 물어봐도 아인슈타인 맞음
과학자 GOAT 는 뉴턴 or 아인슈타인, 우열을 가릴 수 없는 top 2 임. 세번째가 맥스웰 디랙 노이만 등등... 폰 노이만은 다재다능에 응용력이 좋지.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그야말로 최초의 근본을 밝혀냈고, 폰 노이만은 지금 우리가 당장 사용하는 것들의 근본.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더 근본.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연구한게 바로 가장 근본을 연구하다가 사망. 더 살았으면 TOE (모든 것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 모든 과학자들의 꿈) 을 밝혀내지 않앙ㅆ을까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고...
과학자에 물리학자만 있냐
폰노이만 보다는 앨런튜링이 와야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