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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듣기에도 일종의 신비평이라는 게 있다면 믿을까? 물론 과장이 다소 들어간 이야기지만. 일반적으로 대중음악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적/지역적 맥락과 함께 수용된다. 2022년의 한국인이 뜬금 없이 1975년 프랑스의 음악을 듣는 일은 그리 없다는 뜻이다. 대중음악에 심취한 사람들은 많지만, 그런 사람들 역시 어떤 음악을 만든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과 만든 어떤 음악을 찾거나, 최근의 다른 음악을 찾거나 하는 식으로 두 경로 중 하나를 따르며 이동한다. 잡지나 라디오를 통하더라도 그러한 정보는 자연스럽게 태그처럼 따라오고, 이를 굳이 매번 환기시켜주지 않더라도 이를 알고서 전제하고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나 다른 방식의 음악 감상도 있다. 가깝게는 RateYourMusic 등의 음반 평가 사이트의 장르별 추천 차트를 따라가거나, 멀게는 레코드점에서 아무런 음반이나 잡아 계속 쑤셔들으며 뭔가 흥미로운 게 나오기를 기대하는 방식 말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그 음반이 어떤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음반이 나오기 전에 어떤 것들에게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때 이 '어떤 것들'에는 오직 음악만이 고려된다. 이 음반의 4번 트랙에서 특이한 코드 진행이 들어간 것을 보면 아마도 비슷한 코드 진행을 선보이는 A 음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식의. 완전한 분석은 아니지만 취미로는 나쁘지 않다.


나는 후자 쪽의 음악 감상을 하던 사람이고, 지금도 방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더욱이 자주 듣는 음반들이 상업적 성공을 크게 거뒀다고 보기엔 힘든 것들이라 소위 사회적 영향이나 그 전후 맥락을 크게 따질 만한 것이 없던 것도 한몫을 한다. 다만, 그래서 이러한 사회적 파급력과 당대의 일반적 청중에게 어떤 음악이 미친 영향과 그 음악이 문화 속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하는지 등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고도 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대중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영향을 줄 때보다 대중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고, 그걸 감안하면 '대중적이진 않은' 대중음악이 아닌 진실로 대중적인 대중음악을 들을 때에는 좀 더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할 테다.


<한국 팝의 고고학 1990>은 그런 점에서 내게 이 음악의 수용사 및 발전 과정에 대해 대략적인 지침이 되어줬다. 음반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이 음반들을 주로 향유하던 집단들이 어떤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었는지, 어느 음악가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얽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읽으며 19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이 어떤 흐름을 거쳤는지 볼 수 있었다. 음악 자체에 대한 분석을 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제목의 '고고학'이라는 말에 더 가깝다. 수많은 사료와 실제 음반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이 십 년과 그 전후 맥락을 그려나가는 식으로 말이다.


약간 아쉬운 점은 그래서인지 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인디 음악에 대한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는 부분일까. 양준일 등의 댄스 음악이나 해외에서 베껴온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흑인 음악 등 개인적 관심사에서는 벗어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한 번 책을 다시 펼치고 그 흐름을 따라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려 했던 음악들을 들어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만 들었던 세월이 너무나 길어, 소위 '발췌독'으로 안 음악들을 실제로 들어볼 기회를 가진 게 기쁘다. 장필순이나 윤영배의 음악을 자주 들었으면서도 정작 그 음악가들의 관계에 대해 잘 몰랐고, 이들이 다른 음반에 "실질적"인 영향을 얼마나 줬는지 읽으며 실제로 듣고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한몫 한다. 잘 몰랐지만 들어보니 좋은 곡을 알게 된 것도 많기도 하다. (지금은 권혁진의 '날 울게 한 그대'를 듣고 있다.) 집에 두고 자주 들춰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