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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이 바쁘다보니 책도 요즘 잘 못 읽으니까 그래도 최근에 읽었던 괴작에 대한 감상이다.



시대정신이 정말 있는지는 모르나, 문학에선 의외로 이런 게 존재하는 듯하다.


현대 소설의 시발점인 플로베르는 사실 평생을 걸쳐서 쓰고 싶었던 책은 '소용돌이'에 관한 책이었다. 그가 보바리 부인을 쓸 당시 지인의 편지에서 밝혔듯 아무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무에 관한 책을 꿈꾸었듯,


이 소용돌이에 관한 책은 소용돌이가 계속 돌고 돌듯 무언가 계속 돌면서도 결국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관한 책이었다.


'부바르와 폐퀴셰'가 이러한 그의 야심작이었고, 미완이었지만 분명 완성되면 소용돌이에 관한 책이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현대시의 아버지이긴 하나, 보들레르의 계승자 중 하나인 말라르메 또한 비슷한 시기 이러한 책을 꿈꾸었다.


말 그대로 그냥 '책', 모든 것이 되면서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닌, 단 한 권의 무의미한 책.


설명만 들어도 이게 가능한가? 싶겠고, 당연히 말라르메는 실패한다. 아니, 애초에 초고조차 시도도 못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프랑스에선 말라르메의 수많은 사후 출판본 중 '책'이 존재한다, 말라르메가 꿈꾸었던, 세계는 결국 단 한 권의 책으로 귀결된다, 라는 상징주의자들의 이상을 담은 노력일까?


말라르메, 폭넓게는 상징주의 시들이 사실 번역이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듯, 번역이 어려우나, 사실 이 말라르메의 출판된 '책'은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출판사가 원하면 쉽게 번역될 정도로 의외의 텍스트다.


하지만 장담하지만, 말라르메의 '책'은 국내에 결코 출간되지 않을 거다.


이건 말 그대로 '책'을 꿈꾸던 말라르메의 계획서다. 광기에 가득찬 계획서.



초기엔 말라르메도 야심에 차서 어떤 주제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하여 주제 등을 끄적거리지만, 본인도 이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광인이기에 당연히 성공하리라고 확신한 모양인지


'책'을 쓰기 위한 프로젝트는 시간이 흐를 수록 숫자의 나열들로 변모한다.


어떤 상징이 있다기 보단, 상징주의, 특히 말라르메 수학적 단위나, 타이포크래피와 책의 편집에 거의 최초로 중요시한 작가이기에 그러한 지시 사항이다.


대충, 나의 '책'이 출판될 때엔 한 줄에 몇 글자, 그리고 한 페이지당 몇 줄이 편집되어야한다는 등의 나열이다.


분명 말라르메는 광인이다. 이러한 편집과 관련된 숫자를 제외한 나머지 숫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책'이 성공하리라 믿고, 몇 부가 팔릴 것이라 예상하고, 자신이 '책'에 관한 낭독회를 열 때 몇 명이 올 것이므로 이들을 강당에 어떻게 배열할 것인기 등등에 대한 숫자 놀음이다. 당연히 한 권당 몇 페이지로 편집하고, 한 권을 팔 때마다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여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고, 이러한 계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말라르메가 꿈꾼 '책'이 어떤 모습일지는 사실 이 출판된 '책'으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두 개의 주제일지도 모를 주제들,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서술할 것인지조차 수많은 메모를 통하여 고노하고, 그러면서도 당연히 걸작으로서 널리 읽힐 것이므로 그는 세속적인 면모를 따지니까.


강박적으로 숫자 놀음을 하는 모습은 사실 말라르메 본인조차 이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책'이 될 만한 원고 작업은 사실상 전무하니까.


말라르메가 말년에 갈수록 텍스트 배치 등의 편집적인 요소와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그의 유작이자 걸작 중 하나인 '주사위 던지기'는 주사위가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처음부터 타이포로 묘사하는 등의 조화를 이루나 '책'은 그러한 시도조차 없다.


사실 이 '책'에 관한 구상을 담은 말라르메의 '책'을 읽어야할까?


독서는 자유지만, 이미 읽은 나로선 관심도 없다면 굳이? 밖에 내놓을 수 없다. 또한 말라르메의 다른 산문 등을 번역할지언정 이 '책'만은 반쯤은 절대 소개될 리 없다고 확신할 정도다.


물론 말라르메의 광기나 상징주의적인 텍스트를 원한다면 자유에 맡겨야겠다.


적어도 말라르메 자체는 상징주의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자.


아니면, 애초에 말라르메의 실현되지 못한 '책'에 관하여 제목부터 쓰이고, 상당수를 할애하는 블랑쇼의 '도래할 책'도 평론적인 관점에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