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학적 문제들을 고민하기에 앞서 철학적 문제가 의미있는 질문인지 생각해보면 안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면 철학이란 세계를 이해하는 탐구이니까.
어원도 진리를 사랑하다...진리가 뭔지 명확히 말허는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진리란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지는 무엇은 아닐것이다.
정신조차도 세계의 일부이다. 철학적 탐구는 (정신과 정신작용의 부산물까지도 세계의 일부로 포함된다 전제하고) 세계에대해서 탐구하는것이지 밑도끝도 없는 망상으로 점철되는 언어유희는 아니지.

말하자면 철학적 탐구에서 사고의 자유로움을 권장, 보장하는것은, 우리의 사고가 사회적 문화적 윤리적 상식적 이해타산적 제한점들에 의해 방해받는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고란 철학의 본질이 아니고 철학의 방법론일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철학적 탐구는 자유로운 논리의 전개 이전에 먼저 탐구 대상과 우리의 사고가 세계에서 너무 동떨어진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단계를 팔요로만 한다..

이를테면 기린이나 주작에대해서 탐구하고 생각하는것은 철학일까?
ad hoc의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무의미한 망상일뿐이다.
왜냐면 그것들이 우리 세계에서 너무 동떨어져있기때문이지.


무엇이 동떨어져있나?
그걸 알려면, 먼저 우리의 사고의 기반, 개념애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사고는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심지어 비언어적인 -이를테면 수학같은- 사고조차도.


당연한 말이지만, 개념은 직접적으로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본질이라 생각하는 어떤 특질을 개념으로 묶어둘 뿐이지.
어떤 개념은 어떤 실제의 대상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다. 어떤 개념은 대비되는 두 성질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지고. 예를들어서 선은 악이란 개념과 대비될때만 의미있는 개념이다. 실체란 개념은 허상이란 개념과 짝을 이뤄 형성된다. 허상이란 개념이 없으면 실체란 개념도 없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어떤 개념은 본질적으로 관계성을 띤다. 존재하는(적어도 실제로 경험한) 대상을 가리키는 개념만이 전부는 아닌것이다. 이런 개념들을 다룰땐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어. 왜냐면 그것들은 세계엔 없고 우리 머리속에만 있어서, (그것들이 세계에대한 이해일지라 해도, 우리는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대상과 개념을 연결할수 없어서) 해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완전한 혼란만이 남게되는거다.

말하자면 이런거야.
누구든 선이나 악이 무엇인지 알고있어. 하지만 그걸 설명해 보라 하면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지. 이런 개념들은 상식적 수준에서 오히려 완전에 가깝고, 엄밀히 정의하려 할수록 불완전하게 된다.

첫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 그것들과 연결할 대상이 없기때문이다.
아이에게 고양이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양이를 보여주는것이지.

두번째 이유는 그것들의 일부는 본질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대비되는 성질을 가지며 짝을 이뤄 존재하는 개념이기때문이지.
따라서 악을 정의하려면 선을 설명해야 하고 선을 설명하려면 악을 이야기해야한다. 순환논증처럼 돼버리지. 그렇기때문에 이런 \'짝개념\'들을, 대비되는 반대쪽은 제쳐둔 채 한쪽만 설명하는것은 넌센스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많은 개념들은 \'있는것\' 으로 여겨진다. 난 여기서부터 많은 문제가 시작되는거라고 봐. 이기호발이니 기발이승이니...이와 기는 세계에대한 어떤 이해를 설명하기 위한 추상적 개념일뿐이지. 거기서 끝나야 한다.
경험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지각하지도 못한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것이지. 개념이 이러한 불완전한 묶어둠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그것들이 실재하는 무엇인마냥 공리공론을 펼친다. 솔직히 무슨의미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