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


김려령, 「완득이」


 ‘똥주한테 헌금 얼마나 받아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 낸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벼락 맞아 죽게 하든가, 자동차에 치여 죽게 하든가. 일주일 내내 남 괴롭히고, 일요일 날 여기 와서 기도하면 다 용서해주는 거예요? 뭐가 그래요? 만약에 교회 룰이 그렇다면 당장 바꾸세요. 그거 틀린 거예요.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빡은 치는데 그걸 잘 풀어서 설명하지 못하고 우다다 내뱉는 게 영락없는 사춘기 고등학생. 똥주가 누구길래 저렇게 죽이고 싶어할까, 그리고 죽여달라는 표현이 청소년 소설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 오히려 청소년이니 저렇게 아무런 필터 없이 뱉어낼 수 있는 것인가. 근데 왜 이렇게 하찮고 웃길까. 여러모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첫 문단.



9위


양귀자, 「모순」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 이 문단의 백미는 바로 다음 문단에 있는데, 저 말을 하자마자 주인공은 나는 이렇게 ‘격렬한 자기반성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아닌데 어째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스스로 어리둥절해 한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지 기대하게 되는 도입부.



8위


위기철, 「아홉살 인생」


 나는 태어날까 말까를 내 스스로 궁리한 끝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부모, 어떤 환경을 갖고 태어날까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 나도 그렇다. 아니 아마 모두가 그럴지도 모른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생각이 글로 나타난 몇 안 되는 사례.



7위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본인이 살인자, 심지어 은퇴한, 임을 고백하고 시작하는 소설은 처음이었다. 엄청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곱씹을수록 묘한 기분이 드는 도입부.



6위


허버트 조지 웰스, 「타임머신」 (문예출판사, 임종기 옮김)


 시간 여행자(편의상 그를 이렇게 부르고자 한다)는 난해한 문제를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의 회색 빛깔 눈동자는 반짝거리며 빛을 발했고, 평소에는 창백했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생기가 넘쳤다. 난롯불은 환하게 타올랐고, 백합 모양 은촛대에서 빛나는 촛불의 부드러운 광휘는 우리가 든 유리 잔 속에서 확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포까지도 잡아냈다.


- 그림이 그려진다. 난롯불의 적당한 온기와 밝기, 조금은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긴장감과 두근거림으로 약간은 상기된 주인공의 모습. 나까지도 청중 중 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번외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임종기 옮김)


 “창조주여, 제가 간청하더이까,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하더이까, 어둠에서 저를 끌어내달라고......?”

-《실낙원》(X. 743-5)


- 너무나 완벽한 제사라고 생각한다.



5위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 (알에이치코리아, 강미경 옮김)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야.”

 조가 양탄자 위에 벌렁 드러누우며 불만을 터뜨렸다.

 “가난한 건 정말 싫어!”

 메그가 낡아빠진 옷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떤 애들은 예쁜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데 누구는 하나도 없다는 건 불공평해.”

 막내 에이미가 마음이 상했는지 코를 훌쩍이며 거들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 동생들이 있잖아?”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베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 말 한 문장에 설명 한 문장씩일 뿐인데 복닥복닥한 분위기와 더불어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순식간에 그려진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지는 건 덤.



4위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강명순 옮김)


 18세기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 주인공을 혐오스러운 인물이라고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 유달리 신선했다. 그것도 이렇게 심플하게.



3위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황금가지, 히스테리아 옮김)


 “결국, 아이를 보는 것은 맨움이야.”


- 이 책은 모든 걸 뒤엎은 책이다, 라고 선전포고 하는 첫 문장. 여기서 ‘맨움’은 남성을 뜻한다.



2위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삶이란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 단호하면서도 공격적인 말투. 묵직한 울림. 양귀자, 그는 신인가?



1위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문학동네, 권혁준 옮김)


 집의 그늘진 곳에서, 나룻배들이 떠 있는 강가의 햇살 속에서, 사라수 숲의 응달에서, 보리수 그늘 아래서, 브라만의 수려한 아들이자 어린 매 같은 싯다르타는 역시 브라만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자랐다. 강가에서 미역을 감을 때나 성스러운 목욕재계를 할 때, 거룩한 제사를 드릴 때면 싯다르타의 빛나는 어깨는 태양빛에 갈색으로 그을었다. 망고나무숲 속에서 아이들과 놀 때나 어머니가 노래를 부를 때, 또 거룩한 제사를 드릴 때나 학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을 때, 현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싯다르타의 검은 두 눈에는 그늘이 흘러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싯다르타는 현자들과의 대화에 함께했고, 고빈다와 함께 논쟁술을 연습했으며, 명상하는 법과 침잠하는 법도 익혔다. 그는 이미 가장 신성한 음절인 옴을 소리 없이 발하는 법을 알았으니, 온 영혼을 하나로 모으고 명료하게 사고하는 정신의 광채로 이마를 에워싼 상태에서, 숨을 들이쉬며 그 음절을 자신의 내부로 소리 없이 발할 수 있었고 또 숨을 내쉴 때는 바깥으로 소리 없이 발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우주와 하나가 된, 불멸의 아트만을 느끼고 있었다.


- 경건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느낌. 읽으며 순간 환상문학이라고까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