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독갤에는
현재 한국문단의 문제 = 퀴어페미 = 참여문학 = 창비진영 = 리얼리즘
이런 식으로 전부 묶어버리려는 의견이 보이기도 하는데,
대단히 단선적인 구분법이라 생각함.
일단 리얼리즘의 정의를, 1)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가 전개한 하나의 사조로 볼 수 있을테고, 2) 한국에서 창비 진영에 의해 전개된 하나의 문학론으로 볼 수도 있을텐데,
대부분 사람들이 문제 삼는건 후자일거라 생각함.
그런데 이 후자에서 말하는 리얼리즘의 범위가 굉장히 크다는 게 관건인데, 이를테면 한국에서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소개하고 제3세계 문학론을 이끈 것도 백낙청, 염무웅, 김종철 등의 창비 진영 평론가들이었음.
결국 그들이 말하는 리얼리즘이란 시대적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바탕이 된 글쓰기임. 이게 충족되면 황석영의 <손님>처럼 설령 귀신이 나오고 굿판을 벌인다 해도 리얼리즘이라는거임 ㅇㅇ.
때문에 현재 겉절이 문학을 단순한 리얼리즘의 전형으로 보고, "우리는 리얼리즘보다 모더니즘이 좋은데스" 하는 것은 사실상 문제를 왜곡하고 있는거임.
진짜 문제는, 대다수의 겉절이 작가들이 리얼리즘 글쓰기를 수행해내지 못한다는 데 있음. 이건 밑글과도 상통하는 맥락인데, 문창과 나와서 글만 써본 작가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을 써내지 못하니 주제와 소재가 지극히 비좁아짐.
문제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오토픽션임.
"오토픽션"이라는 말이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어쨌든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일을 1인칭 시점으로 표현하려 하니, 그게 총체적인 현실과는 괴리된 결과물이 나오게 됨.
로쟈는 "리얼리즘이 충분히 발달해야 모더니즘이 발달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나도 동감함.
현재 겉절이 작가들이 비좁은 오토픽션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가끔 독갤에선 시대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글쓰기인 리얼리즘과 그냥 자기가 경험한 거 그대로 쓰는 오토픽션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써봄.
- dc official App
개추
오토픽션은 문제가 날 수 밖에 없는 사조임.다자이나 시가 나오야 급으로 잘 쓰는 거 아닌 이상 시비 항상 털리고 잘못 걸리면 추문 벌어지니까. 주제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니 끊임없는 자기복제 소리도 자주 나오고. 사조를 확장해야 한다는 게 옳은 비평이지
그런데 여기서 현재 소수자문학 담론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많은 독자들이 '당사자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임. 소수자 스스로 써내는 글만이 윤리적인 글쓰기라 생각한다는 것인데,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함. 그저께 도서전에서 오혜진 평론가도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당사자성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기를 해야한다"라 말하긴 하더라구.
한줄요약: 글도 못 쓰는 새끼들이 리얼리즘이랍시고 거들먹거리니까 이꼴이다 - dc App
쌉불가능~
AI 시대에 auto - 픽션이 지배적이게 되는 건 숙명적... 우리는 결코 기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어
요즘 작가들 시야가 너무 좁긴 하지
그런데 리얼리즘이냐 오토픽션이냐가, 과연 선택의 문제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 오늘날의 작가들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 놓여 있지 않은가?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겠지만 역량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도 충분치 않다고 봄.
그 문제에 대해선 동의함. 예전의 시대를 총체적으로 써내는 것과 지금 시대를 총체적으로 써내는 것은 난이도가 아예 다르다고 생각함. 당장 우리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그 스마트폰의 작동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데,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다만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많은 작가들이 총체적인 글쓰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데 있고, 그걸 평론가들이 "윤리"라는 이름으로 감싸준다는 데 있음. 김봉곤의 오토픽션도 당초에는 윤리적인 글쓰기라고 평가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작금의 사태에는 크게 두 가지 대응이 가능하다고 봄. 너 말대로 불가능한 이념일지라도 총체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느냐, 혹은 소위 총체성이란 이념 자체를 폐기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느냐. 지금 한국 작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스타일을 추구하건, 퀴어-페미니즘 등 소수자 정체성 문학에 골몰하건, 후자 쪽에 기울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함. 이게 근본적으로 타파 가능한 문제인지, 아니면 문학의 종언인지, 그도 아니면 전혀 비관할 필요없는 새로운 문학의 탄생인 건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네...
딱히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으나 결국 문학의 종언 담론으로 향하게 되는 듯한데 ㅋㅋ 나도 종언 이후의 새로운 문학을 내세운 신형철의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하긴 하지만, 과연 현재의 오토픽션이 그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온전히 담고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임. 김봉곤의 오토픽션과 이를 "윤리"로 포장한 평론계, 이 사이엔 어떤 비평적 태만이 있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임. 비단 김봉곤만에 국한된 얘기는 아님. "남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 사실 가장 덜 부담되는 일이기에 그런 편리한 글쓰기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런 태도가 정작 "이해될 수 없는 타자를 탐구한다"는 소수자 문학의 방향과는 다소 모순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생각함. 포모에 대해선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듯.
나도 그 지점에는 동의함. 현시대 소수자 문학은 역설적으로 대부분 자폐적이라고 봐. 반대로 후장사실주의류의 스타일이 얼핏 보기엔 자폐적이지만 나는 열려 있다고 봄. 오히려 나는 이런 류의 문학은 열려도 너무 열려 있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음. 물론 오토픽션적 글쓰기라는 게 과연 정말 '자동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고... 사실 이미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논의했을 법한 주제 같은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싶네
일단 후장사실주의에 대한 판단은 조금 유보해두겠음. 돌이켜보니 몇 권 읽어나 보았을 뿐 그렇게까지 잘 아는 것 같진 않아서 ㅋㅋ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를 각 두 권 이상씩 먹어 보았다면 충분히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은....ㅋㅋㅋㅋ 다만 이러한 흐름에 대한 좀 더 날카로운 비평이든 뭐든 간에 좀 읽고 싶은데 누구 읽어야 할지 모르겠음. 문학평론 잘 모르기도 해고 있어도 다 소수자문학만 얘기하는 거 같더라
후장사실주의...에 대한 평론 자체를 별로 못 보긴 한듯. 애당초 창간호 찾는 것만 해도 어려운데 ㅋㅋㅋ
그냥 글을 존나 못쓰는 거랑 페미니즘 등 소재에 기대는 게 하나의 다른 면이지. 젠더 소재로만 글쓰는 작가들이랑 만나보면 사람 자체가 작다. 그 이전 세대 작가님들만 해도 와 이 사람 정신이 크다 이런 느낌이 있거든.
작가는 광장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작가들 인터뷰 딸 때마다 방구석 음습한 냄새나. 내 뇌피셜이지만.
글쎄... 이런 식의 해석이 pc담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pc가 교조주의화 되는 것도 경계해야 되지만, 맹목적인 반pc가 교조주의화 되는 것도 경계해야 됨.
같은 말 하고 있는 것인디... 반페미니 반HAN남이니 관심 없음.
음... 뉘앙스는 이해했으나 조금 핀트가 달랐던 것 같음. 일단 난 젠더 소재를 다루는 작가들 뿐아니라 후장사실주의 같은 모더니즘 계열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함.
오토픽션이뭐야
아, 문학의 담론을 믿는 독붕쿤...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내일저녁 이불킥각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 공산주의가 된다는 단계론처럼 리얼리즘이 성숙해야 모더니즘 발달 된다? 개소리임.
애초에 문학 자체가 서양에서 온 것이고, 그 서양 문학의 발달 단계가 리얼리즘의 성숙에서 모더니즘의 발달로 이어진 건 맞으니... 한국에서도 20년대 리얼리즘 글쓰기가 30년대 모더니즘으로 이어졌음. 로쟈의 본의는 모르겠으나 아마 문학사적 경험에 의한 판단이 아닐까 싶음.
그럼 엘시드의 노래, 일라이스, 심청전, 구운몽 쓰고 있으면 에밀 졸라 발자크 황석영, 조정래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야 모더니즘의 공정으로 갈 수 있다는 거냐? 리얼리즘의 바운더리도 그렇지, 오토픽션이라고 지칭한 사소설이 리얼리즘의 한종류가 아니면 반리얼리즘임?? 모더니즘 자체가 베케트 나보코프 조이스 울프 같은 자기반영적 형식 실험의 범주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보는데 의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마이크로 단위로 따옴표로 격차치지 않고 뒤쫓는 숨가쁜 리얼리즘이라고 볼 수도 있음. 아니면 광역화된 마르크스주의처럼 인간 군상들이 기댄 물적토대나 역사나 사회상을 병풍처럼 드러내야 리얼리즘인가? 리얼함의 기준이되는 정전(캐논,클래식)을 거부하고, 도식으로 덜 분화된 지금여기의 취향으로 돌출하는게 모더니즘임.
그니까 리얼함의 기준이 되는 캐논이 먼저 있어주어야 그에 대한 거부나 돌출도 가능하다는거임. 마담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 없이, 율리시스만 덩그러니 나올 수 있을거라곤 생각이 안 됨.
맨 처음에 말한 자본주의 공산주의 단계론은 전혀 상관 없는 얘기고, 심청전, 구운몽 운운도 전혀 맥락에 맞지 않음. 그리고 내가 혼동을 피하고자 글에서 리얼리즘을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사조가 아닌, 창비 진영에 의해 전개된 문학론으로 한정해뒀는데, 거기에 사소설이 리얼리즘이네 아니네를 따지는 것도 불필요한 일인 듯함.
상관이 없긴 왜 없어 말을 이해 못하네 공산주의 하는 애들이 러시아나 중국처럼 전근대 농민 경제 상태일 때 마르크스주의 도식을 들이대서 공장 노동자들이 신디케이트 거대화된 공장조직으로 자연스럽게 단합 조직되서 세계혁명 동시에 일어나려면 일단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먼저 열심히 하고 공산주의 하자고 했다가 결국 현실에서는 레닌이나 모택동처럼 농민을 혁명 1.5중대 내지 1중대 삼아 나라 뒤집었던 것처럼, 모더니즘 하는데 리얼리즘 먼저 성숙해야 하는게 현실고려 없이 이념형 먼저 들이댄 책상물림 생각 아니냐고 한건데 뭐가 맥락에 관계없음? 구운몽 심청전 언급도 같은 맥락임.
그리고 사소설이 리얼리즘이 아니면 반리얼리즘이냐 질문이 왜 유효하지 않은지 모르겠는데 일본 메이지 이후 사소설이 19세기 졸라 발자크 같은 사실주의 리얼리즘에서 파생되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발달한건데 왜 따로 논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심지어 오토픽션 운운하면 니가 먼저 언급한 거 아닌가? 리얼리즘과 오토픽션이 구분은 될수 있을지라도 왜 서로 동떨어진 것으로 취급되냐고. 캐논도 그래. 캐논도 문학사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임의적인 걸로 봐. 역으로 추산해서 리얼리즘 이전에서 지들 구미에 맞는 요소를 뽑아내는 거지. 여튼 내가 타겟으로 삼은 건 로쟈 이현우의 저 범속한 사고방식이므로 더 따지지는 않을께.
플로베르가 리얼리즘의 선구자인 동시에 누보로망의 아버지인 것은 간과한 채, 마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간극을 호메로스와 프루스트, 심청전과 정지돈인 것처럼 과장한 게 문맥에 안 맞았다는거임. 그리고 너도 "숨가쁜 리얼리즘"이라 표현하며 고도로 발달되고 변형된 리얼리즘이 곧 모더니즘과 연결된다는 걸 인정하고 있잖어
그리고 여기서 사소설이 리얼리즘이네 아니네를 따지는 건 "이 사과가 빨간가요? 둥근가요?"라고 묻는 것과 같음. 창비의 리얼리즘론에서 소설이 사소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님. (윗글에서 서술했듯이, 심지어 귀신이 나와도 리얼리즘으로 봄.) 그니까 리얼리즘이며 사소설인 작품도 있고, 리얼리즘이 아닌데 사소설인 작품도 있는거임.
말이 엉키고 있는데 내가 처음 문제제기 한 거는 '리얼리즘이 충분히 성숙해야 모더니즘이 된다' 저 말임 저게 개소리라는 거고 지금 다시 보기에도 개소리임 조이스식 의식흐름을 숨가쁜 리얼리즘이라고 한 건 리얼리즘이 변형되어서 모더니즘으로 튀어나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리얼리즘 단계의 현실 모사의 성숙을 거치지 않아도 충분히 튀어나올 수 있는 거고, 그걸 문학사 단계론으로 리얼리즘을 센터기둥으로 꽂고 전근대 이야기 문학이나 이후모더니즘 문학 속에서 소위 '리얼리즘적인 것'을 역추적 하는 거 자체가, 이념형을 미리 정해놓은 짜고치는 고도리같은 신화구조다, 다시한번 말해서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플로베르든지 발자크 졸라든지 그런것의 성숙과 절정 없다 가정해도 현실반영의 요소는 문학사 속에서 면면하다 과장하지마란 뜻
호메로스와 프루스트, 심청전과 정지돈의 차이를 과장하지 말라는 건 오히려 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인데, 마담 보바리나 안나 까레리나 없이 율리시스가 덩그러니 튀어 나올 수 있었냐는 말은 너가 한 거 아님? 왜 마담 보바리나 안나 까레니나 같은 소위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문학을 조이스 나비등의 것과 분리를 해서 단계론으로 특권화를 하는 거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는 소리임. 사소설/리얼리즘 구분과 관련해서 너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겉절이 소설이 리얼리즘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리얼리즘의 서브장르인 사소설에 매몰되서 그렇다, 총체적 글쓰기를 해야 된다는 소리지? 그건 접수했음. 시간적으로 후순이 더 진화한 건 아니지만 연대기 적으로 따지면 이전방식으로 돌아가잔 얘기로 들리는데
요컨대 나는 사소설과 리얼리즘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고 사소설이 리얼리즘이 뻗어나갈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 보았고 지금도 이 생각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봄 너가 하고자 하는 말은 리얼리즘일반의 강조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요즘 겉절이 소설이 창비가 미는, 마르크스주의식 토대론이 잠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역사적 풍경, 기술 조건, 계급갈등 등이 병풍을 이루는 총체적 글쓰기로서의 소설을 써야 한단 얘기지???
글쎄... 내가 세계문학을 전공하진 않았으니 그쪽으로 자세한 말은 못 하겠다만, 국문학에선 원래 이상과 박태원의 문학을 모더니즘이 아닌, '심화된 리얼리즘'과 '확대된 리얼리즘'이라 표현했음. 이게 동시대 평론가 최재서의 표현임. 세계문학사에선 모더니즘이 먼저 나오고, 이후에 리얼리즘이란 개념이 역추적 되었다 이 말임?
보통 이해하기를 19세기 초중반 리얼리즘 문학 나오고 이후 세기말부터 세기초에 모더니즘 등장, 이렇게 보지 않나? 이 도식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쓴 건데... 그리고 박태원 이상을 심화된 리얼리즘이다 라고 하는 거 처음들어보는데 국문학 평론은 내가 잘 모름. 그니까 조이스의 의식흐름도 첨예화된 미시리얼리즘의 일종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 라고 앞서 내가 언급한 거랑 같은 맥락으로 이해는 됨 일단은. 성숙한 리얼리즘이라는 문학사의 도식도 그럴싸한 메타소설의 일종이지 않나 하는말임. 마르크스주의의 토대- 상부구조 론과 연동해서, 토대가 성숙했으니 그에 걸맞는 이데올로기이자 세계인식의 형식으로서 문학 출현...이런 게 인과관계가 분명한 과학인가 딴지 걸어 본 거임.
창비식 리얼리즘 그 전체를 긍정하고 있진 않음. 리얼리즘에 대한 신격화나 섹트주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고 봄. 굳이 표현하자면 남녀노소, 권력자와 빈민을 불문하고 시대적 현실을 객관적이고 폭넓게 바라볼 대형작가가 필요하다는 말임. 요컨대 발자크나 이병주가 시도한 글쓰기를 말하는 것임.
리얼리즘 문학과 모더니즘 문학의 출현순서에 대해서는 따질 것은 없는데, '출현한 시간적 선후 관계'로 '인과관계'를 강하게 걸수 있나 문제제기 한 거임.
그러니까 경제 계급 같은 물적 토대를 염두해두는 건 차지해 두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긴 병풍처럼 어우러져 사회적 관계가 충분히 조망되는,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를 갑이라고 보는 거임? 10권짜리 대하소설 아니면 발자크-졸라 처럼 연작 소설 쓰는?
ㅇㅇ 머 그런거지. 나로서는 맑시즘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참여문학론자 가라타니 고진이 "공산주의의 말로와 더불어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말한 걸 보면 네가 말한 잠재적인 연결성은 찾을 수 있을 듯함. 그리고 리얼리즘-모더니즘 성장론에 대한 로쟈의 정확한 본의는 모르겠으니 일단 이쯤 해둡시다 ㅇㅇ
뜨끔합니다... ㄹㅇ 문창과 출신답게 쓰는 족족 오토픽션같아서 글 접고싶어집니노...
일본 사소설 담론이 재현되는 것 같기도 하고
리얼리즘이 경험세계를 기술해야 하는데 자기가 만들어낸 도식을 써내려가니 문제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쓰면 다 리얼리즘인가? 실재에 대해 써야 하는데 상상에 대해 쓰고 있어
이건 내 글과는 완전히 상충하는 것 같은데... 난 작가 자신의 빈약한 경험만을 소설로 쓰려는 편의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한 것임. 요즘 소설가들이 폭넓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음.
나도 그 의미로 한 말이긴 함
고등학생도 아니고 모더니즘 리얼리즘 척척 구분해서 보는 니네들 능지가 처참한 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