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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자체는 논리정연함과 명료성이 떨어져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시적영감이라고 해야하나. 좀 논리를 벗어난 인식론이 있는 것 같다. 허황되다고 표현 받을만하지만 또 달리 말하면 통속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뇌리에 떠오르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읊는 것 같다고 욕을 할 수 있으나, 다른 쪽에서는 뭔가 색다른 감성과 인지체계를 보여준다고 흥미를 가지는 사람도 잇을 것이다. 흔히 실존주의 선구자로 취급받는 것도 인식론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줘서 그럴것이다. 그리고 키르케고르가 문학성을 높이 평가 받는 것도 사실이다. 산문이긴 하나 뭔가 시적인 구석이 있다.
똑같이 실존주의 선구자인 도끼와 비교해보면 번뜩이는 사상에 대해 심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게 공통적인 것 같다. 이념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정신. 그리스도적 순교적 자세이다. 키르케고르는 독신인 것과 다르게 이성적 문제에 대해 흥미가 엄청나게 강하고, 책에서도 이성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비유에도 여자를 많이 쓴다. 약혼녀 까지 포기한 게 개인적 결함인지 개인적 신념 때문인지 몰라도, 사실 특별한 신념을 지닌 사람은 세속적으로 결함 있는 사람 취급 당하기 쉽다. 사회라는 게 공감대적으로 존중을 요하는 믿음이 필요한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끌리는 감각이 특별하고, 기대하는 바, 믿는 바 존중하는 바가 차이가 심하다면 사회의 공감대에서 심하게 벗어나 잇다. 여전히 조직폭력배 생리와 마찬가지로 상납과 보호라는 원칙으로 움직이는데, 세속성에서 벗아나면 상납할 의지도 별로 없고 재능도 계발되지 못한다. 그러면 보호도 못받는다. 그래도 우선 납견이에서 탈피 못하면 갈취하는 조폭의 생리 연쇄고리를 뿌수지 못한다.
이 책에서 그리 임팩트는 못받앗지만 실존주의란게 좀 무기력한 반항이고 독립시도 아닌지 모르겠다. 거기서 좀더 폭발력을 갖출려면 뭔가 더 가미되야할 거 같다. 어떤 특정한 사상에 끌리는 것도 처음엔 시적감흥에서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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