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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강연: 생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조명한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동양인은 전체주의고, 서양인은 개인주의다. 동양인은 소속된 집단에서 굳이 튀지 않으려고 하고, 서양인은 의견 피력에 조금 더 자유롭다. 동양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서양인은 개별적인 개체에 주목한다. 동양인은 사물의 성질을 바라보는 반면, 서양인은 사물의 형태와 특성을 바라본다. 비단 책이라는 매개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피상적으로나마 알려주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는 사람들도 앞서 소개한 동서양의 특징들이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생각의 지도』 또한 동서양의 차이, 그 중에서도 특히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발현하는 차이를 다룬 책이다. 『생각의 지도』의 저자이자, 이번 EBS 강연의 주인공인 리처드 니스벳은 본디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은 동일한 절차로 작용한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니스벳에게 동양인과 서양인 간 무의식의 불일치는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현상이었으며 반드시 타파해야만 하는 고정 관념이었다. 그는 여러 문화권에서 자란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실험을 진행했지만, 그 실험들이 모두 동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과 서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이 사고방식에 있어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는 결과가 나와 기존의 통념을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하자 자신의 가설을 전면적으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의 지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서문화권에서 자랐지만 집안 가족 구성원들이 동문화권 사람들인 사람의 경우, 어떤 상황에서는 서양인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지만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동양인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는다는 사실이었다. 주변 상황이나 사람들이 서양을 조금 더 연상시킨다면 서양인처럼 사고하고, 그 반대로 동양을 연상시키는 배경에 둘러싸인다면 동양인처럼 사고한다는 것이다. 마치 스위치를 온오프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문화권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는 점은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의외의 사실로 다가왔다.
EBS 강연에서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동양과 서양이라는 큰 범주로 양분했지만, 『생각의 지도』를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본다면 니스벳이 시행한 실험들은 중화권의 영향력을 진하게 받은 한중일 삼국과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력을 진하게 받은 서유럽과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실험들은 대개 앞에서 언급한 국가들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때문에 다른 지역의 동양인들과 서양인들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을 수 없다. 니스벳의 주장이 중국과 상대적으로 무관한 타 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유럽 지역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인지는, 적어도 『생각의 지도』 단 한 권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니스벳이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를 고대 중국과 그리스 로마의 차이로 설명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리처드 니스벳의 EBS 강연은 동서양의 차이를 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의식이 왜 그런 행동과 생각을 했는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무의식은 생각과 행동에 항상 영향을 미치지만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섯 차례의 EBS 강연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강연은 무의식이 사람들의 완전하지 않은 기억과 인지 능력을 어떻게 메워주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니스벳의 말에 따르면, 때로는 의식적인 선택보다 무의식적인 집중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때도 있으며 선택 과정에 있어서 무의식이 작용할 시간을 주는 것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선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다룰 때에는 넉넉한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동사와 맥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동양과 명사와 대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 변증법적 원리에 집중한 동양과 형식 논리에 집중한 서양. 모든 동양 문화권과 모든 서양 문화권에게 통용되는 관념이라고 하기는 부족해 보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던 동서양 사이의 차이를 선명하고 쉽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생각의 지도』는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좁아진 지구가 서로간의 문화 차이로 신음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왜 동양과 서양은 다른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최근, 스웨덴에서 식사 시간에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스웨덴게이트'처럼,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만큼 발전한 오늘날에도 문화 차이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과 놀라움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서로간의 다름을 존중하기 위한 첫걸음은 서로간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난 『생각의 지도』가 그 첫걸음 역할을 해주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