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인생의 활동과 목적들로부터 자발적으로 도망치고 세상과의 접촉을 

일부러 단절한 결과, 나는 내가 그렇게도 피하려 했던 것과 마주쳤다. 

나는 삶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세상과 접촉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기질이 세상과 만났던 경험을 통해, 삶을 느낄수록 고통스럽기만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지만 접촉을 피해 나를 고립시키자 

그러잖아도 예민한 나의 감수성은 고립으로 인해 더욱 극대화되었다. 

만일 세상과의 모든 접촉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면

내 감수성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차단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도 숨은 쉬어야 하고, 

아무리 활동하지 않으려 해도 조금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립으로 나의 감수성이 악화되자 

이전에는 내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던 정말로 사소한 일들마저 

파국적인 재난인 양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내 도피 방법은 잘못됐다. 

나는 불편하고 힘든 길을 돌아서 결국 원래 있던 곳으로 도망쳐왔다. 

삶에 대한 역겨움 위에 여행의 피곤까지 더 짊어진 셈이었다.

한 번도 자살을 해결책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삶에 대한 나의 증오는 사실은 삶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고 있는 이 불행한 모순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마침내 그것을 이해한 후에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이는 내가 무언가를 이해하려 할 때면 늘 일어나는 일로서, 

이해한다는 건 결국 하나의 환상을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를 분석함으로써 내 의지를 죽였다. 

분석하기 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절이 내가 의지를 갖기 전이라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