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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논문 800쪽가량되는 벽돌책이라 읽는데 시간좀 걸렸다. 각 장이 한명의 사상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한편의 논문을 통해 한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것을 느꼈다. 관심있는 몇몇 사상가의 경우 추가적인 독서를 통해 지식을 늘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계간 사상'이라는 학술지에서 4년여간 꾸준히 프로젝트로 기고해온 서양정치사상에 관한 논문들을 엮은것이다. 정치철학계에서는 그나마 가장 인지도있다고 할수있는 강정인교수가 엮었다. 그러나 학술지 자체가 자금문제로 사라질만큼 열악한 정치철학계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머릿말에 한국의 현실에 적용할수 있는 교과서에 해당하는 논문집을 만들어보겠다는 당찬포부로 시작했다는데 프로젝트가 끝나기전에 학술지 자체가 없어져서 개별작업과 땜빵으로 마무리지은 슬픈 책이다.

한국에서 인문사회계 전반적으로 펀딩이 어려운 상황이기는 한거같다만 그중 정치철학쪽은 그 정도가 심한거같아 안타까웠다. 같은 정치학의 분과라도 정치제도론이라든가 국제정치 쪽은 현실과 관련이 있어서 그나마 펀딩도받고 학회도 굴러가고 하는거 같은데 사상은 현실에 관련이 약하니 버려지는 모양이다. 정치철학이라도 그나마 현대정치철학은 페미니즘이나 다문화주의등에 힙한 주제들을 연구하며 그래도 명맥은 유지하는거같다. 그러나 이 책처럼 근대의 사상가들이나 더나아가 고대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걍 눈물만 나온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돈안되면 하지말자.

이전에 읽었던 고중세 정치사상은 시대가 굉장히 넓어서 고대국가, 제국국가 식으로 수세기를 넘는 하나의 정치체제를 기준으로 연구의 장을 분리했었다. 근대 정치사상은 마키아벨리를 시작으로(15세기)양차대전이 있기전인 19세기까지를 대상으로 하기에 세기별로 한 장을 편성하고 있다. 고중세에 비해 짧은 기간에 많은 사상가를 다루고있기에 역사에 대한 설명보다는 사상가와 철학 자체에 대한 설명이 많고 그렇기에 이해하기도 더 어려운 편이다.

구체적으로는 세기별로 5부, 사상가별로 19장의 구성을 띠고있다. 각 사상가별로 한명의 교수가 담당하여 서술한 논문모음집이다. 프로잭트 형식으로 엮었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이 썼기에 일관성에 문제가 있고 특히 교수 특유의 너가 읽건말건 나는 내갈길간다 식의 서술으로 개인적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장도 있었다.(개인적으로는 홉스, 흄 부분). 그러나 엮은이 강정인을 포함하여 김용민 황태연이 각각 3장씩을 서술하여 이들이 거의 책의 반을 썼기 때문에 이들의 글에서는 연속성을 찾아볼수 있었다.

강정인은 마키아벨리, 버크, 토크빌에 대한 글을 썼다. 프로젝트 대표로 서문에서 한국적 교과서를 쓰겠다고 밝힌 포부와 같이 그의 논문들은 마지막에 모두 한국 현실에 대한 제언으로 글을 맺고있다.(대부분의 교수들은 한국적 상황을 쓰지 않음). 그가 쓴 사상가들은 보수주의, 현실주의, 민주주의라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강정인은 폭넓은 사상적 스펙트럼을 그대로 흡수하고 리스펙트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키아벨리의 서술에서는 그의 냉혹한 처세술에 몰입하고 버크에 대한 서술에서는 보수주의에 완전히 빠져들어가는 설명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한국적 상황에 이들을 어떻게 적용시킬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강정인의 글은 어떻게든 환자에게 다양한 약을 처방해보려는 의사를 생각나게 했다.

김용민은 스피노자, 몽테스키외, 루소에 대한 글을 썼다. 그의 글의특징은 중용에의 강조이다. 그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중세철학과 고대철학을 종합적으로 통합했다.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을 주장했지만 영국적 상황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루소는 인민주권을 강조했지만 인민의 지력을 의심하는 현실주의적 모습도 보였다. 그의글은 사람들이 사상가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곡해하는것을 경계하려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면모가 있다고해서 그 사상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건지는 모르겠다. 두가지를 다 할줄 아는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그의글은 조심성이 강해서 좋게보면 중도적이고 신중하고 안좋게보면 소심해보였다.

황태연은 칸트, 헤겔, 마르크스에 대한 글을 썼다. 황태연 글의 특징은 김용민과는 대조적으로 전투의지가 가득해서 읽는데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정치철학 논문으로 웃기게 할수있다니 신기한 재능이었다. 그는 독일유학파 출신으로 독일사상가를 전문적으로 썼는데 각 사상가에 대한 그의 온도차가 재미있다.
칸트에 대해서는 그는 모든 철학의 기초를 세운 자이자 그의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강한 예측력을 가진다며 목에 힘줄을 세운다. 그의 영구평화론과 이성비판 세트가 오늘날 유럽연합등이 번영하는 상황을 잘 예측한거 아니냐며(이 논문은 나온지 10년여 됐다) 각종 비판들에 조목조목 반박한다.
한편 헤겔에 대해서는 극히 분노하며 마지막에는 그의 미네로바 부엉이가 날지 말았어야된다며 저주를 퍼부으며 글을 마친다. 그는 본인 석사논문을 헤겔로 쓰기도햇고 젊은시절 해겔에 미쳐있던 사람으로서 헤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꼭 밝혀야겠다며 헤겔의 인권을 무시하는 내용들을 몹시 비난하고 그를 옹호하는 발언에도 대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논문이 이렇게 감정적인건 처음봤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자기가 예전에는 찬양하는 논문을 쓴바가 있는데 요즘 정보화시대의 추세를보니 그의 노동중심설과 하부이론설 착취이론등은 요즘의 추세에 맞지 않고 자기의 발언이 틀렸음을 인정한다고 쿨하게 말하며 그의 이론들이 정보화사회에 맞지 않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이분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검색해봤더니 요즘에는 독일철학 손절하시고 공자에 대해 계속 책을 쓰고 계시더라.

이 9장의 내용말고는 각자 한명씩 맡아서 쓰셨는데 내용분절이 많고 이해가 잘 안되는 장들도 있었다. 이해가 안되는것은 교수가 글을 못써서일수도 있고 내 배경지식이 일천해서일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각장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고 글을 마친다.

1부 15-16세기는 4장으로 구성돼있다. 4장에서는 각각 마키아벨리, 모어,루터, 칼뱅을 다루고있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장에서는 공화주의와 현실주의의 관계. 정치와 윤리의 분리등 비교적 교과서적 내용 설명이 있다. 모어의 사상에서는 그의 유토피아가 이상향으로 써진건지 아니면 반어법인지에 대한 논란을 다루고 반어법일수도 있다는 의심을 제시한다. 루터와 칼뱅의 논의는 중세의 교권위주 사회에서 종교권력을 세속으로 돌리는 이들의 종교개혁이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루터는 이론적 논쟁을 했고 칼뱅은 종교윤리를 사회전반에 적용시켰다.

2부 17세기도 4개 장으로 구성돼있다. 사상가는 홉스, 스피노자, 로크, 몽테스키외이다. 홉스에 대한 설명에서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기독교 관련 설명이 많아서 이해가 잘 안됐다. 스피노자는 예상과달리 흥미로웠는데 데카르트의 기계적 세계관에 고대의 덕을 융합시켰다는게 흥미로웠다. 로크의 대한 서술에서는 로크 자유주의 양면성을 말하는데 주로 식민지에 영향을줬다는 부정적 측면에의 부각이다. 몽테스키외에 대한 서술에서는 그의 권력견제론을 세부적으로 탐구한다.

3부 18세기는 5개 장으로 구성돼있다. 흄, 루소, 칸트, 버크, 페더럴리스트 페이퍼가 각각의 주제이다. 흄에 대한 글에서 인식론과 윤리학을 다 다루는데 내 배경지식도 부족하고 지면상으로도 한 논문에 담기는 벅찬게 아닌가 싶어 이해가안됬고 추가서적을 봐야겠다고 느꼈다. 루소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주요저작들을 어떻게 읽는게 좋은지에 대한 순서도와 민주주의자로 흔히 알려진 그의 현실주의적 면모를 말한다. 칸트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철학이론과 국제정치이론을 간략히다룬후 이들이 현실적실성이 있음을 말한다. 버크에 대한 글에서는 버크와 보수주의에 대한 교과서적 논의를 다루고 한국에서의 보수주의도 비중있게 논한다. 페더럴리스트에 대한 글에서는 로크 몽테스키외 등에서 철학적으로만 논의되었던 권력분립이 실제 토론을 통히니 구현된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 구체적 과정을 살핀다.

4부 19세기에서는 6명의 사상가를 다룬다. 헤겔, 기조, 토크빌, 밀, 마르크스,  니체가 주인공이다. 헤겔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사상의 모순점과 그의 사상에 녹아있는 인권무시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기조의 글에서는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기조의 사상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잘 보여주고 있어 그의 민주주의 비판이 오늘날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토크빌에 대한 글에서는 그가 본 민주주의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밀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넓은 사상적 스펙트럼이 사실은 '진보주의'로 묶일수있음을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이론이 정보화시대에 오면서 적실성을 잃었으나 여전히 조금의 중요성은 있다고 말한다. 니체에 대한 글에서는 그의 니힐리즘에 근거한 정치철학이 모든것을 기독교문화로 수렴시킨다는 한계가있지만 문화적 연구의 중요성을 환기했다는 중요성이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