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13일의 월요일(금요일보다는 주로 월요일에 출몰한다)이 되면
시집 코너 앞에서 가방을 메고 대놓고 길을 막으며
한자와 특수 문자가 없어 읽고 필사하기 쉬운 시집을 찾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사서가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하... 이 시집은 너무 올드해. 패스"
"지난번 읽은 시집을 쓴 시인과 이름이 같아서 패스."
"필사해서 올릴 때 같은 시인의 시집이 너무 많으면 이름이 중복되어 저작권 문제로 시비 걸릴 수 있으니 패스."
"좋긴 한데 이거 시 하나가 왜이리 장문이야? 이거 필사하려면 꽤 고생하겠군. 패스."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코호, 코호."하는 이상한 숨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런 시에 빠진 정체불명의 남자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먼저 도내 S급은 아니더라도 최소 B+급 이상의 미소녀를 준비하자.
그 미소녀가 남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라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읊는다.
그러면 남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릴 수 없지. 크큭.." 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으로 휘리릭 페이지를 휘날리며 훑어보던 시집을 덮는다.
"역시 내가 역겹구나. 실망이다."
라고 말하면 여기서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이렇게 말해라.
"아뇨. 당신은 역겹지만, 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이 도서관에서, 누구보다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남자는 씨익 웃으며
동그란 안경알을 빛내고는 착시현상을 보이듯 스르르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이 알려지지 않은 열세 번째 도서관 괴담의 주인공을 없애는 방법인데
안타깝게도 시집을 읽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13일이 되면 도서관이 문 닫기 한 시간 전, 시집 코너 앞에 출몰한다고 한다.
올해에도 도서관 괴담의 주인공 중 하나인, 시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을 성불시키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내 얘기로 오해하지 마라. 오전에 이미 도서관에 다녀왔다. 크큭...
한자 피하는 게 좀 깨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