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생명을 가진 것들은 금각처럼 엄밀한 일회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존재는 자연의 모든 속성의 일부를 담당하고 융통성 있는 방법으로 그것을 퍼뜨리며 번식시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살인이 그 대상의 일회성을 말살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오산이다. 그렇게 해서 금각과 인간의 존재와는 더욱더 명확한 대비를 갖고 나타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멸망하기 쉬운 모습에서 도리어 영생의 환상이 떠오르고, 금각의 불멸의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멸망의 가능성이 떠돌았다. 인간처럼 필멸한 것은 근절시킬 수 없다. 그리고 금각과 같이 불멸한 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어찌하여 사람은 거기에 눈뜨지 못하는 것일까? 나의 독창성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메이지 30년대에 국보로 지정된 금각을 내가 불태워 버린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이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의 모든 것을 확실하게 줄여 버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확대되자, 해학적인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금각을 태워 버린다면," 하고 독백했다. "그 교육적인 효과는 현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유추에 의한 불멸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550년 동안 금각이 교코지 연못가에 서 있어 왔다는 것이 아무런 보증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뿐더러, 우리의 생존이 그 위에 얹혀져 있다는 전제가 당장 내일이라도 허물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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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위는 부상신의 재난에 대해서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하고 이 재난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각이 존재하는 세계를 금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밀어 넣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의미는 확실하게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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