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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읽은 줄 알고 읽었는데 언제 읽은 것 같은 기억이 들었다. 분명히 집에는 안사놨는데 언제 읽은거더라. 지하생활수기랑 햇갈렸나.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비참함의 미학이 잘드러나는 작품이다. 작품 주인공이 수용소에 복역하는 처지니까. 사실 러시아 이전에도 혁명은 많았고, 러시아 혁명도 유럽 혁명사에 후발적인 데, 왜 수용소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 의아하기도 하다. 그 때 교육수준 차이도 있고 소설이란 장르가 흥하지 않았으니 지식인 계층도 거기에 손을 별로 안대거나 손을 대더라도 유산으로 남지 않은거 같다.


여러모로 쇼생크탈출이 떠오르는 작품인데, 합법성에 기반 둔 법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탈법 위법 저지르는 악랄한 간수와 죄수지만 고귀한 인간군상이 있다. 현실의 축소판으로 본다면 가진놈들이 법을 악용하여 악랄하기도 하다. 법이 같은 편이긴 해도 패배한 진영이라면 그 동조자를 보고 앞잡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이기는 쪽에 줄서고, 비굴할 정도로 아양을 떠는 것. 그게 덕스럽다고 할순 없어도 통치에 필요악이고, 그런 충성심 검증된 자들에게 감투를 줘서 불만종자를 억제하는 것은 어느 체제나 필수불가결하다. 그게 반항하는 만큼 중립적이라고 볼수 없고, 주인 아니면 노예라고 이분법적으로 보면 노예 상급노예에 가깝다. 만약 주권과 독립 이런 가치를 존중한다면 저런 앞잡이들이 따개비처럼 달라붙어서 집을 지어서 거대한 구조물을 한번씩 청소 해주는 게 보기 좋아지고, 사회에 불필요하게 자원이 흘러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앞잡이들이 체제에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해주리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필요악으로서 천한 종자들인 만큼 속물적 가치를 대가로 앞잡이 노릇 해주는 것에 가깝다. 여성의 취집과 같이 줄서는 것도 간접적 형태로 이익을 취하는 만큼 부와 권력이 있는 쪽이 끌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 구조물이 너무 오래되면 거기에 흐르는 자원이 비대화 되서 자원의 흐름을 건전하게 하려면 앞잡이들을 정리를 한번씩 해야한다.


병영, 교도소, 수용소, 학교 항상 사상과 육신 양면에서 구속되고, 통제되고, 인력이 소모되야할 곳에서는 항상 집단생활을 강요하더라. 그것이 상대적으로 소수인 간수와 교관 교사 관리감독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독자적인 사상이 꽃피기 힘든 환경이 된다는 점이 지배계급에게 메리트이다. 좁은 공간에 입이 늘어나면 먹는 것만 늘어날 뿐 아니라 뱉는 것도 늘어난다. 내뱉는 숨결 뿐만 소음도 너무나 늘어난다. 어딜 가나 분탕종자들은 있기 마련이며, 천하고 교양 없는 자들의 수요는 많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수들의 불굴의 인내력을 영웅적이라 예찬 햇어도 죄수들 사이에서도 정치범과 소매치기나 부모의 자산 때문에 패륜 저지른 막된 잡범들과 같은 범죄라는 프레임으로 묶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죄수들 사이에서도 지식과 이념을 갖춘 계급이 나뉜다. 그 막된 놈들과 같은 공간에 묶는 것 자체가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만드는 것보다 더 하게 미꾸라지 10마리를 풀어서 흙탕물로 만들어버리고 더 이상 맑은 물에서 살아야하는 고기가 살수 없게끔 고문하는 것과 같다. 


거기다 노동으로 인력을 소모시키면 사상을 압제하는 데 금상첨화이다. 기득권 입장에서 기존 체제에 대해 회의하고 비판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리가 없고 독자적 사상의 과도기로서 회의주의부터 기득권들은 햄릿적 우유부단함이라고 공격하고, 비생산적 활동이며, 니들 사고는 우리가 정해준 방침대로만 따르면 된다고 강요한다. 반항하는 막된 종자들도 체제를 대체할만한 이론적 배경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 이론적 배경이 마련되면 거기에 편승하여 운동에 가담할 수는 있다.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감각이 있는 고상한 인간이 미쳐버린다. 주인공도 작중에 그런 가혹한 환경에 미쳐버렸다. 이 작품에서 제일 고상한 인물은 노동으로 고된 몸으로 밤마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책인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미숙한 사상을 형성하면서 악랄한 간수를 벽돌로 쳐서 죽일려다 미수로 그치고 고문당하다 죽어버린 신자이다. 그의 희생은 순교적이나 파급력은 압제를 해방시킬 만큼 결과를 불러오지 못했다.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긴 해도 그게 처우개선이나 통제강화라는 결과를 불러와도 근본적으로 교도소라는 이념적 역할의 틀이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통제된 공간에선 사상도 성숙하기 가혹한 환경이다. 합법적인 영역인 학교와 병영도 근본적으로 문제는 같다. 쇼생크 탈출에서 누명쓰고 들어온 주인공이 교도소에 들어와서 교도소장의 지시하에 세금세탁 등 더러운 일에 손을 대고 교화 시켜야할 장소에서 오히려 타락을 강조하듯이 그 두장소에서는 자유권을 침해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관습이라 인간구실할 기본권에 대한 보호에 대한 숙고를 소홀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