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아래 이탈로 칼비노 얘기가 나왔길래 얼마 전에 정말 재밌게 읽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감상을 간식 먹으면서 대충 써봄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마르코 폴로가 몽골제국 황제인 쿠빌라이 칸에게 제국의 각 도시들을 여행하며 느낀 기억과 감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됨. 여기서 각 도시들은 그 공간이 실재하는 곳인지 아닌지 불분명하고 그 형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기보다는 화자(마르코 폴로)가 느낀 감각이나 인상을 통해서 그려짐.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화자가 겪은 어떤 또렷한 사건이나 인과를 통해서 전달되기보다 그 각기 도시가 화자에게 남긴 흔적들이 파편화되어서 나열되고 이야기를 전해 듣는 쿠빌라이 칸(독자의 위치에 등치되는)은 이러한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지도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소설이 완결됨. 


  그 가운데 우리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한 짧고 흩어져있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나름대로 서사를 만들기도 하고 그 흥취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이야기 사이를 헤매게 됨(=도시들을 여행하게 됨). 그와 동시에 소설이라는 매체가 전달되는 양상(화자에게서 독자에게로)에 대해서 뚜렷하게 감지하게 되지. 소설은 우리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어떠한 거대한 세계나 일련의 사건들을, 그 전체를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그 실마리가 전부 해결되면서 우리가 종국적으로는 하나도 빠짐 없이 살피고 이해하게 된다고 쉽게 착각하지만, 실상 화자가 말하는 만큼만, 또 화자가 말하는 대로만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작가가 자신이 그려내는 소설에서 다루는 세계 전체를 통어해서 화자에게 소설 내적으로 묘사하게 하는 세계, 그것의 전체를 우리가 인지할 수 있다기 보다는 화자가 아주 소상히 말하지 않는 한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만큼, 또 말하고 싶은 대로만 들을 수 있다는 거임. 그렇다면 소설 안에서 도시는, 또 도시와 도시가 이어져서 만들어낸 지도는 대체로 거의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러한 빈 공간 안에 독자가 운신할 수 있는 지평이 새로 생김. 이 소설은 그런 방식으로 스토리텔링되고 그래서 세계의 전체나 아니면 사건의 처음과 끝 같은 건 사실상 확인할 수 없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은 이야기라는 큰 줄기 안에서 화자가 종속되고, 그러한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나, 즉 독자가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게 되는 아주 수동적인 독해를 깨트려버림. 그보다도 소설에서 다루는 세계 안에서 그 세계의 일부만을 경험한 화자가 들려주는 아주 일부분의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는 소설에서 다루는 세계 전체 또는 일부를 상상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가게 되고 이러한 지점에서 소설 읽기의 새로운 재미가 나타남. 이는 소설이라는 매체 형식에 아주 깊이 천착한 결과라고 하겠음.


  어디서 줏어 듣기로는 이탈로 칼비노 소설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어쩌면 자신의 삶과 소설이 깊이 밀착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이런 말에 공감함.


  재밌음 짱잼이고(대신에 아주 고전적인 서사를 좋아하면 안 맞음) 그밖에 추천한 <교차된 운명의 성>은 화자 설정이 더 복잡하게 되어있는데 그대신 이야기가 좀 얇아져서 재미가 좀 떨어졌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