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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갤러들 처럼 좀 심도있게 쓸라했는데 결과가 똥이다. 글이 두서없고 읽기가 불편할 것임. 논리적이지도 않고 별 내용도 없음. 나도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요약만 봐도 됨.
우리나라의 한창 산업화가 진행 될 때의 몇몇 소설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소외되는 인간’에 대해 다룬다. 사회가 발전하고 삶의 질은 좋아지지만 그와 반대로 인간들끼리의 관계는 소홀해지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가 나타나거나 그 이전의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해야 하고 뭐 그런 거 말이다.
일본의 고도성장기 당시의 사회를 그리는 이 소설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계속해서 사회를 방황하는 존재이고 독자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보면서 제각각 얻는 느낌이 아마 소설을 감상하는데 중요한 요소일 듯싶다.
작중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섹스’와 ‘자살’로 생각한다.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삶은 저 두 개의 단어로 설명가능하고 실제로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도 설명할 때 저 두 단어를 제일 많이 언급한다. 아니 사실 섹스만 언급한다. 물론 이 소설이 그냥 섹스 소설이라는 건 아니다. 사실 자살은 그저 자살로 봐도 충분하기에 더 설명이 필요하진 않지만 섹스는 좀 더 깊은 뜻이 있다. 나는 이를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 또는 “그저 의미 없는 육체적 쾌락”정도로 해석하려한다.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와타나베’가 ‘나가사와’와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섹스를 하는 건 그저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할 뿐 더 깊은 뜻은 없다. 사실 여기에서 ‘나가사와’라는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데 그는 백 명에 가까운 여자들과 섹스를 하지만 결국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건 그는 자신의 의지로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스스로 소외됐다던가하는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과하게 사회에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주위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나가사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던 자신의 여자 친구인 ‘하츠미’는 결국 그러지 못하고 자살을 해버린다. 그리고 ‘와타나베’도 그를 떠난다. 사회에 과하게 적응하는 한 부류의 인간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섹스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나오코’와 ‘레이코’가 지내던 시설을 보면 여기서는 섹스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나오는 것처럼 서로 아무 얘기나 하고 대화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 ‘와타나베’ 또한 시설에서 지내다 바깥을 그리워한다. 현대 사회와 다르다고 관계가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섹스를 하며 관계를 맺는다. 또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자살을 해버린다. ‘나오코’와의 뒤틀린 관계를 맺던 ‘키즈키’는 그들의 뒤틀린 관계에 의해 섹스를 하지 못한다. 더 이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결국 ‘와타나베’라는 타인을 끌어들여 새로운 관계를 맺어보려 하지만 이에 지친 ‘키즈키’는 결국 자살해버리고 만다(아마 이게 ‘키즈키’가 자살한 이유일 듯하다). 낙오된 것이다 사회로부터. ‘나오코’ 또한 ‘와타나베’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려하고 섹스도 하지만 자신의 삶에 가장 큰 부분이던 ‘키즈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 끝내 자살을 하고 만다.
‘나오코’가 시설에서 지낼 무렵 그녀를 잘 보살펴주던 ‘레이코’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나오코’를 매개로 ‘와타나베’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데 ‘나오코’가 죽은 후 그녀는 시설에서 나와 ‘와타나베’와 섹스를 한다. 둘은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섹스를 하고 노력하지만 결국 ‘레이코’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 아마 그녀도 ‘와타나베’와 관계가 소홀해지던가 자살을 하던가 하는 방식으로 끝이 날것이다.
다시 인물로 돌아가서 이러한 경향에서 예외인 사람이 하나 있는데 ‘미도리’이다. 그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와타나베’와 섹스를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미도리’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의식해서 그런 것이다. 사실 그녀는 좀 과하게 타인과의 관계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계속해서 음란한 농담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를 표현한다. 작 중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몸을 갈구하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미도리’는 ‘와타나베’를 떠나려고도 하지만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끝에는 ‘와타나베’가 관계를 쌓고 싶어 갈망하는 대상이 된다. 즉 그녀도 다른 등장인물과 섹스로 관계를 쌓는 건 다르지 않다. 다만 상황 상 그러지 못했을 뿐.
끝에 가서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갈망한다. ‘나오코’도 ‘레이코’도 없는 지금 그를 채워줄 사람은 ‘미도리’ 하나뿐이다. 그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네가 보고 싶다고 필요하다고 외친다. 그녀는 조용히 묻는다. “너, 지금 어디야?” 문득 ‘와타나베’는 그가 어디 있는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알 수가 없다. 장소가 아니라 사회에서 어디에 있는지. 그는 고립된 것이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로 ‘키즈키’와 ‘나오코’와 같은 상태로. 물론 40살까지 살아서 독일 공항에서 비틀즈 노래를 듣는걸 보면 ‘미도리’와 잘되었던가 했을 것이다.
흔히 이 책을 사람들은 청춘의 사랑에 대한 책이라 생각한다.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사랑, 그리고 ‘미도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그런 책으로. 물론 맞는 말이지만 나는 이 책이 그저 사랑만 얘기 하는 거 같지는 않다. 사회에서 고립되고 타인과의 관계를 쌓고 싶어 안달이 난 그런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아니라 그저 타인의 온기가 필요한 한 청춘의 발악이 아닐까 하고. 그렇기에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나오코’의 “나를 잊지 마, 언제까지나 기억해줘” 가 아니라 ‘미도리’의 “너는 어디에 있는 거야? ” 가 아닐까 싶다.
섹스가 체고다
역시 무라카미는 '사정했다'로 끝나야 맞는거야
섹스 or 자살? 이렇게 읽을수도 있구나ㅋㅋ 많이 외롭니
ㄴ외로운건 아니고 걍 읽다가 저런 생각 들더라
신선한해석이네ㅋㅋ 다양한 해석가능성이 문학의 매력이지
작가가 소설의 집필을 완료한 시점부터 그 소설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독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문학의 해석과 감상은 세상의 것이 된다. 맨 부커상 수상작가가 한 말
섹ㅡ스
섹스하고싶다 시발 - dc App
산업화에 따라 소외되는 인간. 개인주의. 여기저기서 몇번 주워들은 하루키 떡밥인데 글쓴이가 잘 풀어낸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 글 제대로 써보는거 ㅊㅊ
글 좋다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