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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말고는 이문구 작가의 다른 작품은 잘 언급이 없어 간단히 리뷰하는 겸 영업하자면
작가 이문구의 유작이 된 2000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별 볼품 없지만 대지의 생리에 충실히 따르는 푸나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중 장석리 화살나무와 장동리 싸리나무가 젤 좋았습니다.
관촌수필에서도 그랬듯이 이 나무연작에서도 여전히 전傳의 형식은 잘 나타나있는데 장석리 화살나무에서는 빨갱이로 몰리는 홍쾌식 옹의 일대기를 전의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자연의 생리에 따른 역사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나무는 홍쾌식옹이 겪은 일생을 통한 교훈과 대응되는 것이 남다른 울림을 줍니다.
장동리 싸리나무는 다른 나무연작들과 특히 분위기가 다른데 작가의 자전적 회고가 담긴 작품이면서 이 역시 이야기체속 소설체인 전의 형식을 사용하고있습니다.
여기서 보여준 시적경지의 문체는 작가의 인생역정의 또 다른 결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겉은 웃고 있지만 속에는 울음이 깔려 있다”라는 김주영 소설가의 평처럼 인물들이 보여주는 해학은 피식거리며 웃게 하면서도 그 인물의 삶의 절실성 그 자체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끝은 씁쓸합니다.
아무튼 “한국문단의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만큼 작가의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었는데 관촌수필 말고 <내몸은..>포함 다른 작품도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내 몸은..>의 인상깊었던 구절과 김윤식 교수의 편지
그래라. 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좋다 이거여(장평리 찔레나무-11p)
잡히면 죽었다. 들켜도 죽었다. 수는 그 수뿐이었다.(장석리 화살나무-37p)
나 역시 저냥 저랬던겨. 달빛에 번들거리는 저 물빛마냥 살아온겨. 못나게. 지지리도 못나게.(장동리 싸리나무-177p)
퉤, 재미없어서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재미없어하는 병신 같은 놈들. 봉출씨는 톱자루를 쥔 손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고욤나무 밑동을 베기 시작하였다(장곡리 고욤나무-268p)
이문구 선생에게
김윤식
형이라 부르기엔 제 친밀도가 모자라며 씨라 하기엔 거리감이 느껴지매 이문구 선생 이렇게 부르기로 합니다. “그의 문체는 아마 평단 전체가 달라붙어 연구해도 모자랄 그런 풍요로운 숲”(김지하)이라는 지적이 빈말일 수 없고 보면, 이 나라 제일급의 말의 감각과 운용의 대가인 선생을 두고 그 호칭에 제가 한동안 망설이었음이 어찌 괴이하겠습니까. 학예나 기예 등을 남에게 가르치는 사람을 일러 선생이라 합니다. 말을 다루는 영토인 문학판에서라면 작가 이문구란 단연 선생이 아닐 수 없을 터입니다.
이문구 선생, 수상을 축하합니다.
덕담에 인색하다고 저를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성해 보건대, 남들이 공들여 쓴 작품들을 읽는 능력밖에 없는 제 처지에서 보면, 읽기에 골몰한 나머지 다른 여유가 없었던 탓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이문구식 글쓰기에 대한 덕담이 이렇게 늦어진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제 제 독후감을 조금 말해봄으로써 덕담에 대신할까 해서 붓을 들었습니다.
선생의 글쓰기의 위업 중 『관촌수필』(1977)이 있습니다. 8편으로 구성된 이 연작집의 제목이 어째서 「수필」로 되었을까. 한동안 뭇사람의 시선이 이곳에 머문 바 있었지요. 제 역시 그러한 축에 듭니다. 이는 소설 거부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수필과 소설과의 거창한 싸움판이 벌어졌던 것이 아닐까. 선배 염상섭, 채만식은 물론 스승 김동리와의 싸움이기도 했던 형국으로 보이기조차 했습니다. 이른바 장르간의 싸움판에서 힘겹게 획득된 전리품이 수필이라면 그만큼 값진 물건이 아니었겠는가.
이 싸움의 특징이 선생에겐 운명적이었음에 주목합니다. 이 연작집 속의 한 편인 「공산토월」에 그 운명적 표정이 응축되어 있어 감동적이었지요. 부재하던 아비가 한밤중 이웃 잔치집 마당에 나타나 춤추는 장면이 그것. <모란꽃 무늬>로 표상되는 이 장면은 시적인 것도 아니지만 더구나 소설적 세계일 수 없었던 것. 모종의 새로운 형식 창출이 불가피했던 것. 이 절체절명의 장면에서 탄생한 것이 전의 형식이었던 것. 태사공의 『사기』 열전의 형식이 그것.
<모란꽃 무늬>가 뒷받침하고 있는 <전>의 형식을 수필이라 불렀던 것. 전의 형식과 수사학을 제치고 <모란꽃 무늬>가 우선적이라 함은 이런 문맥에서입니다.
경기도 벌안 마을을 다룬 9편의 연작 『우리동네』(1981)계를 두고, 제가 공허한 수사학의 울림으로 비판한 것은 <모란꽃 무늬>의 소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수사학을 동원하더라도, <모란꽃 무늬>가 빠진 전의 형식이란 자칫하면 빈 방울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강요된 망명객 되기, 곧 뿌리를 떠났던 것이지요. 선생도 여기에다 감히 수필이란 말을 쓸 수 없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작가 이문구의 선생다움은 이에 주저앉지 않았음에 있습니다. 이번 수상작인, 8편으로 된 <나무>계 연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가 그 증거 아니겠습니까. 기본형인 전의 형식이 마침내 「공산토월」의 수준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물빛 무늬>(자기 자신 찾기)가 그것. <모란꽃 무늬>가 세월 속 저편 아픈 곡절을 겪어 마침내 <물빛 무늬>로 변모되어감이 전의 형식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모란꽃 무늬>의 투명화 과정, 이를 품격이라 부르는 것. 이에 언어의 현란함까지 가세하고 있지 않겠는가.
건필하소서.
(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
이문구 그는 짱이야
저 책에 실린 장곡리 고욤나무 진정으로 끝내주는 작품임. 이문구는 메인스트림과 서브가 있는데... 메인스트림은 '관촌수필', '우리동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나무 시리즈)' 이렇게 세 권의 연작단편집이고, 한국문학의 명편임. 서브로 볼 수 있는 게 '장한몽', '산 넘어 남쪽', '매월당 김시습' 등과 같은 장편소설 3권과 '유자소전'과 같은 기타 단편 중 좋은 작품이 몇 편 있고...
애초에 김윤식이 5살인가 더 형 아님? ㅋㅋ 김형 이형 이렇게 부르겠다는건가 - dc App
엥 김윤식이 더 나이 많았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