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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의 청년 독서가 "제임스초이스"의 경험에 따르면, 우리가 독서를 할 때 많이 읽는 것만큼 진지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책을 얼마나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가? - 사실 우리가 책을 진지하게 읽을수록 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것이다.



책을 단순한 심심풀이로 읽는 사람과 심심풀이 이상으로 읽는 사람이 각각 독서로부터 얻는 것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자기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직접 만들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능력은 인간이 주체적인 개인으로 살기 위해서 필수적인 기술이며,



이런 능력을 배양하지 못하는 교육은, 속이 빈 것이며, 오히려 해로운 것이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능력이 없을 경우에, 우리는 그저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거나 대세에 휩쓸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없을 경우에,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 경험은 다소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 하는 것은 물론 폭넓은 식견을 갖기 위해서 중요한 기준이지만,



책을 얼마나 깊이 읽을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성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는 독서란 자기 감각의 한계를 더듬으면서,



그 한계가 부서지고 확장되고 견고해지는 것을 최대로 느끼면서,



최대한 깊게 읽어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독서 경험을 독서의 핵심이자 기준으로 가져보는 것이 중요한데, 물론 입문자가 이런 독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런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충분한 기반이 필요하다. - 이런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예인 셈이다.



최대한 깊게,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한 시간에 소설이나 시 2-5페이지씩을 읽어나가 완독에 성공하는 경험은 마음속에서 정말로 많은 것들을 바꾼다.



물론 모든 책을 이런 식으로 읽을 수는 없고, 읽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내 생각에 문학만이 이런 식의 독서를 가능하게 해준다.



정말로 영원한 작품, 위대한 시는 감정과 이성의 복합적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 한 번쯤은 그 밑바닥에 닿아보는 것이 좋다.



이런 식으로, 필자가 온 신경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해 완독했던 작품은 지금까지 대략 10권 미만인 것 같은데,



그 10권 미만의 책들이 필자의 모든 판단력과 감각과 깊이와 사고력의 중핵을 이루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책들을 필자의 <인생의 책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독서를 시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1. 정말로 좋은, 믿을 만한 책들을 골라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깊이에서 이루어지는 독서는 농담이 아니라 개성에 정말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 번역 작품으로 읽고자 할 경우에는 반드시 좋은 번역을 골라야 한다. 영혼에 무엇을 새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심정으로 고르라.



문제는, 이 경우에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최고의 명역들을 통해서만 이런 독서를 시도해야 한다.



3. 한 번의 완독에 무한한, 자기의 진정한 한계까지 집중력과 시간을 투자해보라.



4. 문장을 읽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문장을 느끼는 것, 그 리듬과 감각의 핵심을 체화하는 것이다. 의미 파악보다 감각적 파악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문장의 의미는 복합적으로 전달되는 시적 감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 이런 식의 독서는 미치기 딱 좋은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 즉 일생 동안 이런 식의 독서는 지극히 안전하게 제한된 횟수 내에서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무협 소설의 비유를 끌어오자면, 한 권의 고전 작품을 자기의 내공 심법으로 온전히 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언제나 <주화입마>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요즘 작가들은 이런 식의 독서 경험이 부족한 탓에 복합적인 감각의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체로 문장의 배후에서 아무런 고전적인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다.



즉 그들의 <인생의 책들>이라는 것의 깊이가 사실은 상당히 얕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