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롱받는 20세기 > - 원희석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나의 조카, 시인 원희석이 써놓은 시의 제목 「20세기」를 「이씹새끼」라고 읽는다 내가 자꾸 「이/씹/세/기」라고 또박또박 읽어 줘도 「이/씹/새/끼」하며 귀여운 목소리로 앵무새처럼 읽는다 아무래도 세상에 물들고 싶지 않은 영리한 조카는 「이십세기」를 「이씹새끼」라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과 기대, 인류 멸망의 예감, 아프리카 피억압 인민의 해방과 독립이 필요한, 서양 문화의 발전에 희생당하는 아시아 제민족의 투쟁이 필요한 「20세기」라고 천천히 설명해 주자 어린 조카의 까만 눈동자 속에는 혁명 전사가 되겠다는 의지의 눈물인지 삼촌이 사주는 불량식품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의 눈물인지 조카의 눈동자 속에 거룩한 「20세기」가 반짝반짝 빛난다
자, 이제 천천히 한 번 더 따라해 보렴
「……조/롱/받/는/……이/십/세/기……」
조카는 나를 한참 쏘아 보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
「조통가튼 이씹새끼」
뭐? 나는 깜짝 놀라
「조통가튼」이라니?
「좆통가튼」이 아니라
「조/롱/받/는」이라니까, 하며 눈을 부릅뜨자
…………
「……이씹새끼」하며
쪼르르 옆방으로 도망을 간다
20세기 짊어지고 21세기로 나아갈 위대한 조카가
안방 떠나 옆방으로 도망을 간다
원희석의 <조롱받는 20세기>라는 시다.
아마 우연히 시를 올리는 블로그에서 보고 알게 된 시로 기억한다.
막상 원희석의 시집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저 시가 수록된 시집은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흑흑...
아무튼,
조카는 조커와 같다.
조롱하는 광대와도 같다.
그리고 그런 조카가 시인을 조커로 만든다.
21세기는 진정 조커의 시대인가.
20세기보다 더 빛나는 캐릭터, 조커의 모습에 우리는 더욱 열광하게 된다.
그리고 씁쓸한 이 시대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 모두 조롱받는 20세기를 넘어 조통같은 20세기를 초월해
21세기를 우리 뜻대로 수정하고 파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조카 돌보기는 조커 될 각오를 해야 한다... 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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