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다 읽어가는데
지나가는 향설에는
4부가 졸작이라 박경리 선생이 주화입마에 빠져 5부 집필이 늦어졌다 카는 소리가 있던데
4부가 1-4부 통틀어 가장 박경리 선생의 소설가적 역량이 드러나는 부분인 거 같아 그 말에 동조할 순 없는 것 같다.
특히 유인실과 임명희를 묶어 이야기를 풀고 몽치를 등장시키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조금 일어날 정도였다.
다만 아무래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무력화되고 죽어나자빠진 입장에서
이야기를 심도있게 이어 가자니 이러한 묘수가 나온 거라 생각해본다면,
4부 쓰면서 고생은 매우 심하게 하셨을 거 같긴 함.
졸작이라 주화입마는 아니고
심혈을 기울여 이어붙이느라 주화입마는 일리가 있을 거 같음
굿 - dc App
지금 1부부터 4부 현재까지 다 읽으시는 데에 얼마나 시간 걸리심? - dc App
4회독째라 잘 모름.
집중이 필요한 수준의 독해가 상당수 있어서 집중력에 따라 편차가 클 거 같은데, 4-5부로 갈수록 점점 그런 게 커짐. 왜냐면 국제정세와 더불어서 얘기를 해야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뭐 이래저래 말이 많음.. 1-2부는 좀 머리 쓸 부분은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라 빨리 읽을 거라 봄. 3부는 그 중간이고 4-5부는 국내얘기로 할 얘기도 마땅찮아 국제정세나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음. 지금이야 나무위키나 뭐 이런 저런 인터넷에서 자료로 쉽게 국제정세 정리할 수 있지만 책이 나오던 시기엔 정말 소중한 보물이긴 했을 듯.
나도 4부 읽으면서 도대체 이렇게 쓰기 위해 몇 백권, 몇 천권을 읽은 걸까 그 생각만 했음 ㅋ 그런데도 지식 자랑하려고 쓴 게 아니라는 게 충격이었음
박경리 선생의 다독이나 상당수의 인터뷰가 있었음은 인정하나, 난 그것보다는 본문에서 말한 내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음 챕터로 이어지게 만든 그 소설가적인 역량에 충격을 먹었음. 3회독까지는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던 부분이었는데.... 단연 압권이라고 생각해. 특히 명희를 만나기 위해 3인방이 뭉쳐서 내려갔다가 거부당하는 내용 이후로 이야기가 요동을 치는데.... 충격적이었음.
박경리 작가는 1988년 겨울 토지 4부를 완성하여 지식산업사에 출간하고 나서 완성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였고, 토지는 작가 생각에 불만족스러운 작품이라면서 1990년에 들어서면서 작가 본인의 의지로 아예 절판시켜버리고 2년 동안 칩거에 들어감. 멀쩡하게 한창 잘 팔리던 토지가 작가에 의해 절판되어 서점가에서 사라지면서 출판계와 문단에서는 난리가 났고, 이어령 선생 등 원로 문인들이 박경리 선생을 찾아가 "독자에게도 읽을 권리가 있다"면서 설득하려 했으나 작가는 요지부동이었음. 결국 박경리 작가를 설득해 낸 사람은 무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었고, 토지 5부가 문화일보에서 연재되어 완결되는 데 정주영 회장이 크게 기여함. 그래서 토지 완간 잔치 기념 사진을 보면 그 한복판에 정주영 회장의 모습이 있음
http://www.kimdonggill.com/newstory/ns.html?num=10627&page=4&which=&where=
요기
보면 정주영 회장과는 93년 가을에 처음 만났다고 되어있는데, 딴지 걸려는 건 아니고 5부가 한창 연재중이던 때라 저 글이 사실이면 절필을 관둔 건 정주영 회장의 설득 때문은 아닌 듯함.
박경리 작가는 본래 굉장한 속필이었고, 토지 1부에서 3부까지는 9년 동안 거의 논스톱으로 써내려갔는데 작품의 분량, 밀도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음. 그런데 토지 3부 이후 토지 4부가 완결되기까지 9년이 더 걸림. 토지 1~3부까지 쓰여진 시간과 같은 시간이 토지 4부를 쓰는데 들어갔고, 그렇게 고생하여 썼는데도 토지 4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나 작가 본인의 만족도는 영 별로였음. 이 때문에 박경리 작가는 토지를 절판시킨 후 꼴도 보기 싫어하였고, 마침 북방외교로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자 중국 여행 다녀오고 힐링에 들어감. 웃기는 것은, 주화입마에 빠져서 쉰다는 사람이 토지의 무대인 용정 등을 직접 다녀오고 여행기 써서 출간하고, 계속 근면하게 취재하고 글쓰고 그러면서 힐링을 했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