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언가를 공부를 한다면 공부하는 자료가 근거가 있어야 하고 확실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확실하지 않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불교는 여러 사료들이 발견되고 있는 중이며 어떤 사료가 발견되는가에 따라 학계가 요동치는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퓨어담마는 자신들만이 상좌부 경전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며 대승불교는 불교가 아니라 거짓된 경전을 근간으로 삼는 종교이고 이는 큰 악업을 짓는 것이며 오로지 상좌부 불교의 빨리 경전 만이 부처님의 말씀을 완전히 담고 있고, 이에 더해서 상좌부 불교의 경전 해석은 틀린 것이 확실하며 자신들의 해석만이 완전하고 퓨어담마만이 올바른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과격한 주장입니다
퓨어담마는 팔리경전만을 믿고 후대의 주석서도 믿지 않을 만큼 팔리 경전의 맹신한다고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팔리 경전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경전이라는 것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최근 불교계가 혼란스러우며 일반 불자들은 무엇이 부처님의 말씀인지 혼란스로운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퓨어담마 측에서 개인이 찾아보고 믿음은 개인의 영역이라고 말하며 언뜻 보면 개인의 생각에 따라 찾아나설 것을 주장하지만, 이는 퓨어담마가 학술적으로 근거가 있는 주장일 때나 가능한 것으로 퓨어담마의 주장은 오로지 자신들의 전통에 의해서만 변호됩니다. 의도하였던지 의도하지 않았던지 학술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혹은 확연히 부족한 자신들의 주장을 은근히 다른 주장들과 동격으로 올려 놓는 것입니다.
먼저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초기불교 시대 :부처님이 직접 살아계셔서 말씀을 전했던 시기와 부처님 입멸후 100년까지의 시기
추가 적인 설명 : 여러 가지 자료를 살펴보았을 때 부처님이 세속적으로 80년을 살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는 것이 정설입니다만, 부처님이 언제 입멸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남전과 불전의 전승이 다르고 남전 내에서도 전승이 다르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부처님의 입별 시기를 남방불교 기준 중 태국과 미얀마에서 통용되는 BC544년 설로 통합했습니다. 즉 서기를 불기로 변환하고 싶으면 544년을 더하면 됩니다.
2. 부파 불교 시대 : 흔히 말하는 야사 십사로 인해 분열하게된 부파 불교 시대
추가적인 설명 : 이를 근본 분열이라고 하는데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어진 것을 말합니다.(이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분리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대중부가 후에 대승불교가 되었다고 보는 입장도 있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근본 분열에 대한 전승도 남방과 북방이 다른데
남방의 전승에 의하면
근본 분열은 상좌부의 야사 장로가 당시 바이샬리의 비구들이 계율에 어긋나는 10가지 행동(야사 십사)을 하고 있다고 보고 그에 대한 심의를 행하면서 두 집단의 갈등이 심해져 분열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에대한 전승은 남전과 북전 둘이 있습니다. 둘 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래에 대한 논의가 당시 있었다고 추정되는 논의이며 계율에 어긋났다고 해서 바이샬리(후의 대중부)가 정법이 아니라고 속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생전에 전통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할 때 그 전통을 불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정법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주장하는 것은 바이샬리 측이고 이를 반대했던 것이 상좌부 장로 측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1.염정 : 원칙적으로 출가자는 음식을 저장할 수 없으나 소금을 약이 아닌 음식물로써 먹을 수 있다
2.이지정 : 출가자는 정오에 모든 식사를 마쳐야 한다. 바이샬리 측은 정오에서 조금 지나더라도 식사가 가능하다
3.취락간정 : 탁발을 해서 식사를 한 후에도 오전 중이라면 다른 마을에서 탁발을 할 수 있다.
4.주처정 : 한 곳에서 포살을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포살을 할 수 있다. 같은 지역에 있는 모든 출가자들이 모이기 어려우니 각 주처에 따로 포살을 할 수 있다고 한 것
5.수의정 : 원칙적으로 상가의 일을 논할 때 전원참석이 요구되나 모든 비구가 참석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항을 결정 후 참석하지 않은 비구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허가를 받아도 된다는 한 것
6. 상법정 : 스승의 시대부터 관습적으로 행해온 것을 자신이 행하는 것도 합법적이며, 출가하기 이전에 행하던 것을 출가이후에도 행하는 것은 합당하다.
7.생화합정 : 정오 이후엔 물이나 과즙과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먹는 것이 금지 되어있었는데. 오후에 꿀을 섞은 우유를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8.음도루가주정 : 아직 발효되지 않은 술을 마시는 것은 가능하다
9.좌구정 : 좌구를 만들 때 규정에 다르지 않고 자신의 취향대로 만들어도 된다.
10. 금은정 : 금은이나 돈을 소유하거나 저축하여도 된다.
이중 금은정은 현대인의 입장에서 봐도 논란이 될 수 있지만, 당시 바이샬리에서는 화폐경제가 성장하고 있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보시받은 돈을 쓸 수 잇다고 주장하기 위하였습니다. 바이샬리 출가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계율을 수정하기를 원했으나 상좌부 장로들은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없다라는 입장이였던 것입니다.
북장의 전승에 의하면
대중부와 상좌부의 분열은 아라한에 대한 의견이였다고 합니다.
이는 아라한의 경지를 폄하하는 5가지(대천의 오사설)인데
1. 여소유 : 탐욕을 벗어난 아라한은 알고서 음행을 하는 일은 없어도 몽정은 할 수 있다.
2. 무지 : 무명을 끊은 아라한도 자신이 이전에 가보지 않은 장소의 이름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3. 유예 아라한도 처음 보는 물건이나 사람에 대해 의심이 있을 수 있다.
4. 타령입 : 스스로 아라한과를 얻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알려줌으로써 자각하는 경우가 있다.
5. 도인성고기 : 괴롭다는 소리르 밖으로 내어 무상, 고, 무아 등을 통절히 느끼고 성도에 들어가는 일이 있다.
이러한 아라한에 대한 비방은 아라한을 최고의 경지로 삼는 상좌부 입장에서는 받아 들일 수 없었고 이에 대한 결과를 분열되었다는 것입니다.
북전과 남전은 어떤 것이 실제로 행해졌는지는 아직 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후에 상좌부도 분열하게 되고 대중부도 분열하게 되는데 이를 지말 분열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전승은 남방 불교와 북방 불교의 전승이 모두 달라서 무엇이 맞다고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학자는 둘의 자료를 복합해서 전혀 다른 입장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방 불교의 전승에서
상좌부 계통은 (상좌부 → 분별설부, 분별설부 → 상좌부불교(현재의 테라와다)), 화지부, 법장부, 설일체유부, 음광부, 설전부, 설경부, 독자부, 법상부, 현주부, 밀림산부, 정량부 로 분열되었다고 보고 있고
대중부 계통은 대중부, 일설부, 계윤부, 설가부, 다문부, 제다부 등으로 보고 있고
어느 계통에서 분열되었는지 알 수 없는 설산부, 왕산부, 의성부, 동산부, 서산부, 서왕산부 등으로
보고있습니다
이중에서 상좌부 계통의 신도들이나 일부 승려들은 상좌부가 인도 불교의 적통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상좌부는 1차 결집때의 상좌부가 아니라 부파 불교로서의 상좌부로 봐야 합니다.
북방 불교의 전승에서
상좌부 계통은 설산부, 설일체유부, 독자부, 법상부, 현주부, 정량부, 밀림산부, 화지부, 법장부, 음광부, 경량부 등으로 분열하였다고 보고 있고
대중부 계통은
대중부에서 또 분열되어 일설부, 설출세부, 계윤부, 다문부, 설가부, 제다산부, 서산주부, 북산주부, 등으로 분열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북방 전승에서는 설산부와 설일체유부가 분열된 것이 상좌부 계통의 1차 분열이라고 보지만 남방 전승에서는 설산부가 어느 계통의 부파인지도 모른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위의 부파들은 한 번에 분열된 것이 아니라 시기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상좌부의 3차 분열시기에 법상부, 현주부, 정량부 등이 분열되어 독자적인 부파가 된것입니다.
이후 번외로
3차 결집이 있는데 근본 분열 시기 (2차결집시기)가 있고 100년 후 즉 부처님이 입멸하시고 200년이나 지나고 아쇼카왕의 주도로 3차 결집이 있었다고도 합니다만. 이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주류인 의견은 3차 결집은 분별설부를 제외한 다른 부파들은 진정한 불교가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료에서 시기도 다르게 기록되고 내용도 다르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상좌부 불교의 전승에 의하면 이때 최초로 경과 율 뿐만이 아니라 논 즉, 주석서도 정리하게 되면서 경장 율장 논장 3장의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불교는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로 퍼져나가고 12세기에는 인도에서는 불교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흔히들 이슬람의 침략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이슬람의 침략만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소수이며 당시 인도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서 없어졌다고 보는 입장이 다수입니다.
대표적인 의견으로는
불교가 번성하며 바라문교(현재의 힌두교와 비슷)가 불교를 굉장히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일부 불교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사상을 불교가 했던 것처럼 체계화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동안 인도 불교는 5세기~10세기 까지 아주 긴 시간동안 점점 학문화 되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대중에게 다가려는 노력이 점점 옅어지고 권력층의 후원을 받아가며 부패합니다. 일본의 코마자와 대학의 나라 야스아키 교수는 “학문연구를 핵으로 하는 이러한 불교는, 학문을 뒷받침하는 광장으로서의 사원과 인재를 잃을 때, 존재의 실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큰 이유는 불교의 힌두화입니다.
인도 내의 불교에서는 12세기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 힌두 문화권내에서 제대로 정착한 불교도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불교가 힌두교의 카스트 사회 밖에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도 못했습니다.
불교도들을 하나로 묶을 독자적인 생활 규칙이나 통과의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의례인데. 출가자들은 승원 안에서 자기들의 규칙에 의거해 수행하면 되지만, 재가자들은 의례에 의해 불교 신도가 되고, 의례에 참여하는 동안 신심도 깊어가기 때문입니다.
독자적인 의례가 없던 불교는 힌두의 의례를 차용해서 사용하였고,이에 따라 불교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힌두화 되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불교는 결국에는 힌두의 신들과 사상도 차용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출가자들로 간신히 유지되어 오던 불교는 12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 출가자들도 있을 곳이 없어지게 되자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또 불교 역사에서 스리랑카가 빠질 수가 없는데 인도에서 불교가 없어지자 부파불교는 스리랑카에서 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처음 전해지게 된 것은 기원전 250년(3차 결집기간과 결집이후에)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가 상적유소경을 스리랑카의 데와남삐야띳사 왕에게 설하고 왕이 개종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후 불교는 스리랑카에서 빠른 속도로 번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띳사 왕 후 200년 정도 지나고 마하위하라 사원을 세우고 다시 수십년이 지나 바하띳사 장로가 또다른 부파를 세우면서 스리랑카의 불교는 대사파와 무외산사파 2개의 파로 나누어지게 되고 이때, 구전으로 전승되어오던 삼장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팔리어 경전, 니까야는 부처님이 입멸하기고 400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상좌부 불교의 3차 결집이후에도 200 몇십년 가까이 구전으로만 전승되어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대 불교는 크게 대승 불교, 상좌부 불교, 티베트 불교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밝혔듯이 부처님 입멸 후 100년까지를 초기불교라고 봅니다. 이는 그전까지는 불교가 단일 종단이었으며 구전 전통을 고수했습니다. 그 전부터 계율상의 문제로 논쟁은 있었습니다만 분열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학설이 있지만 제 생각으로는 당시까지만 해도 부처님의 말씀을 실제로 들었던 사람들이 남아있었고 혹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들이 불교의 분열을 억제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만약 자신이 불교를 분리시켰는데 어떤 사람이 “내가 직접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라고 말하면 난처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넘겨 짚으시면 됩니다.)
상좌부 불교는 위에서 밝혔듯이 인도에서 아직 불교가 살아있을 당시에 있던 여러 부파(학파) 불교 중에 하나입니다. 상좌부 불교는 당시 인도본토의 여러 부파 불교가 12세기에 완전히 멸해졌을 때, 인도 남쪽의 섬이었던 스리랑카에서 주류 였던 분별설부 부파만이 살아 남았기에 현재에는 인도 불교와 가장 가까운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승 불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승과 부파 불교는 기원후 4~5세기 까지는 구분이 없었고, 미국 UCLA 아시아 언어 문화 학과의 그레고리 쇼펜 교수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분리가 되기 시작한 것은 5~6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대승을 중심으로, 부파 불교, 현교와 밀교를 포괄하는 불교입니다.. 흔히들 티베트 불교를 밀교라고 부르지만 티베트 불교는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하는 12-13세기 전까지 가장 번영된 불교의 한 종류 였던 밀교와 불교적으로 많이 교류했을 뿐 밀교와는 다른 가르침입니다. 현재 티베트 불교의 경전들은 학술적으로 굉장히 중요한데, 이는 티베트가 경전에 맞춰서 자신들의 언어와 문법까지 바꿔가며 경전을 남기는데 필사적이었으며,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기 전까지 가장 활발하게 인도불교와 교류를 했으며 인도에서 불교가 망하고 나자 인도의 많은 승려들이 흩어지며 티베트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와중 일본의 학자 무라카미 센조가 대승비불설(대승불교는 부처님의 친히 설하신 법이 아니다)을 주장하면서 학계에 큰 격동이 있었습니다.
대승 불경은 편의상 크게 아함경과 대승 경전으로 구분되는데 당시 대승불교의 승려나 신도들의 인식은 아함경과 대승 경전 모두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법이고 그 중 아함경은 근기가 낮은 이들을 위한 수준 낮은 가르침이고 대승 경전이 수준 높은 가르침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거기에다 대고 대승 경전은 거짓이다 라고 하니 그 충격이 상당했을겁니다.
미리 밝히자면 모든 대승경전이 모두 비불설인 것이 아니며 아함경과 니까야가 모두 친설인 것은 아닙니다. 아니 사실 현대 불교의 어떤 경전이든 친설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한때 대승불교를 믿는 신자들과 승려들은 크게 동요했으나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우선 부처님이 설하실 때 쓰시던 언어가 팔리어라는 것은 상좌부 불교의 일부(현재 상좌부 불교의 승려나 학자분들도 팔리어로 전했다고 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와 퓨어담마 측의 주장입니다.
요즘 바빠서 글이 굉장히 중구난방인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dc App
잘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