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우선 부처님이 설하실 때 쓰시던 언어가 팔리어라는 것은 상좌부 불교의 일부(현재 상좌부 불교의 승려나 학자분들도 팔리어로 전했다고 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와 퓨어담마 측의 주장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퓨어담마는 자신들은 상좌부 불교(상좌부와 다름, 현대의 테라와다)의 경전인 니까야를 근거로 삼고 있으며 니까야는 완전 무결한 부처님의 뜻을 완전히 담고 있는 경전이며, 분열되기 전의 초기불교의 사상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상좌부 불교는 경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승려 한 명이 쓴 청정도론으로 공부를 하고 이에 따라 부처님의 법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정말로 니까야는 부처님의 법을 온전히 담고 있으며 한 치의 오염도 없고, 다른 불교도들은 법을 오염시키는지 알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배경지식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비판입니다.
학자들은 실제로는 인도의 북동부 지역의 언어인 마가다어를 썼을 것으로 봅니다. 팔리어는 인도 북서부방언쪽으로 분류됩니다.
우선 지역이 가까우니 언어적으로 가깝지 않느냐고 물어볼수 있습니다만, 두 언어는 전혀 가깝지 않은 언어입니다. 또한 기원전 2세기의 고본 경전 출토 아함경은 팔리어가 아닙니다.
또한 위에서 밝혔듯이 스리랑카의 최초 경전이 만들어진 시기가 기원후 2세기인 것을 볼 때 오히려 퓨어담마에게 후대의 창작물이라고 공격받는 대승경전이 니까야보다 400년 가까이 앞선 유물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기원후 2세기부터 지금까지 전해지는 빨리어 경전 마저도 그때의 내용 그대로 전승되어오는 것이 아닌 힌두 왕조와, 서방 세력의 침략, 그리고 상좌부의 대사파 자체의 왜곡 등이 있었다는 증거가 이미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상좌부 경전은 400년 넘는 구전 과정을 거치고 또다시 400년간의 문자화와 수정시기를 거친것이빈다.
다시 말해 빨리어 경전은 퓨어담마의 주장대로 부처님의 음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전이 아니이며
현재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남아있는 초기경전 중에서 유일하게 경장, 율장, 논장 의 3체계를 갖추고 있고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퓨어담마에서는 부처님이 스스로 자신의 말을 다른언어로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고 하셨다고 하는데. 그건 팔리어 경장만이 정법이다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하는 말인데, 학계에서는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경전에서 나오는 말이 승단 내에서 단일한 언어를 쓰자는 비구들의 주장을 석가모니가 반대하는 것인데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at a respectful distance. As they were sitting down at a respectful distance, these monks spoke thus to the Lord: “At present, Lord, monks of various names, various clans, various social strata have gone forth from various families; these corrupt the speech of the Awakened One in (using) his own dialect. Now we, Lord, give the speech of the Awakened One in metrical form.” The Awakened One, the Lord rebuked them, saying:
“How can you, foolish men, speak thus: ‘Now we, Lord, give the speech of the Awakened One in metrical form’? It is not, foolish men, for pleasing those who are not (yet) pleased …” And having rebuked them, having given reasoned talk, he addressed the monks, saying:
“ Monks, the speech of the Awakened One should not be given in metrical form. Whoever should (so) give it, there is an offence of wrong-doing. I allow you, monks, to learn the speech of the Awakened One according to his own dialect.”
이것이 퓨어담마에서 말한 것의 원문인데 이게 어째서 번역하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알고 있으신분 계시다면 알려주십시오 수정하겠습니다.
또한 퓨어담마는 빨리어 경전이 한치의 오차도 없다고 하셨지만, 빨리어 경전에서도 모순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좌부 불교쪽 인물로 유명하신 마성 스님께서 미디어 붓다에 기고하신 내용을 링크로 남기겠습니다.(마성 스님은 초기불교와 남방불교에 관해서는 권위있으신 분입니다.)
이렇게 퓨어담마에서 말하는 내용들의 근거에 대해서 비판해 보았습니다.
추가로 퓨어담마를 옹호하시는 측에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기겠습니다.
1.
저는 퓨어담마 측이 남들을 속이려고 그런 행동을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금전적인 요구도 안하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을 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퓨어담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쓰는 글들을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이 말(법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이 너무 좋아서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은게 티가 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검증이 안된 내용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2.
퓨어담마 측은 경전의 내용으로 비판글을 반박하려는 경향이 있으신거 같습니다. 다만 그 경전의 내용이라는 것들이 퓨어담마측의 전통에 의한 번역으로 논쟁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반박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번역이라는 것이 순전히 퓨어담마만의 해석이며 언어학적으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 내외 논문을 뒤져봤지만 진짜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퓨어담마 측에서 말하는 빨리어 해석이 언어학적으로 가치가 있는지를 증명하는 논문이나 기고문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저도 퓨어담마를 처음 접하고 새로운 가르침에 빠져 이해하려고 해봤습니다만 그런 해석을 지지하는, 또 지지할 수 있게하는 자료를 본적이 없습니다.
사견
이러한 불교역사와 여러 사료들을 종합했을 때 현시대의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퓨어담마와 팔리어 경전에 대해 비판했으니 이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비판을 했다고 해서 팔리어 경전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3장이 모두 남아있는 초기경전은 팔리어 경전 밖에 없으니 굉장히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 맞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뜻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여겨지기도 하구요.
최근 많은 불교도들이 대승불교를 오해를 하고 내팽겨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불자들이 들으면 식겁할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성제, 12연기, 8정도 등등 핵심 교리에 대해서 직접 체계화해서 설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것들의 내용을 설하시기는 했지만, 체계화 시킨 것은 후대에 와서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초기불교만이 유일한 불교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시면 경전에 적힌 내용이 무엇이다 이 경전이 이래서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한가지 견해에 묶이게 되시고 제대로 된 불교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집니다.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 조차도 후대에 와서 정비 된 것인데. 어느 경전도 부처님의 친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인증된 어떤 경전도 부처님의 말씀을 담지 않고 있는게 없습니다.
우리가 공부할때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부처님의 사상에 근간을 두고 여러 경전을 읽는 것이 현명하고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더 도움이 될것입니다.
또 선불교에 대해 안좋은 시선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신데. 이 글을 다 적으면 너무 길어 지니깐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경전을 읽고 수행을 하고 이해가 깊어진다고 하는 것들이, 우리가 그 경지가 어느 경지인지 가본 적이 없으니 이것이 맞나 싶고, 도달했다가도 싶었는데 나중에 가서 돌이켜보면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불편한점에 대해서 강점이 있는 것이 선불교입니다.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라고 하는 것인데. 실체와 관념을 구분짓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 실체와 관념을 구분 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경전을 읽자니 이게 이해는 잘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관념이지 아직 제가 실체로 만들지 못한것이죠. 이래서 수행을 해도 지식은 쌓여 가는데 지혜는 쌓이는 것이 느리고, 지혜가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아니고 이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공안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를 쌓아봤자 실체를 보지 못하고 관념만을 보니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며(하지만 뜻이 숨어있는) 스스로가 관념을 걷어내고 실체를 보게끔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흔히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라 라고 하는데 이 말을 하면 계속 그 문장에 집착하니 이런 방식이 탄생한것입니다. 이 관념을 걷어내고 실체를 보기 시작하면 생각이 끊어지고 불교에서 말하는 한가지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남방불교의 수행으로도 가능은 합니다. 다만 선불교의 방식이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남방불교와 대승불교간의 수행방법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곳을 보고 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엄밀히 따지자면 같지는 않습니다만 실체와 관념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19030
마성 스님의 비판
사캬무니 붓다를 쓴 분이시네요.
불교의 역사에 대한 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원시불교는 넘어간다 해도,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부파 불교들과의 싸움을 통해 현재의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로 자리잡혔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영어로 된 어떤 책을 읽은 적 있는데, 나가르주나는 사실 설일체유부를 완전히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그 당시 부파불교들에 대한 설득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가르주나에 대한 내용도 좀 알고 싶습니다.
마치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부파불교의 역사는 불교연구총서의 [아비달마부파의 성립과 주장]을 보시면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용수보살의 책은 그의 사상이 궁금하다면 그의 대표적인 저서 중론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에서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용수보살의 역사적인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안타깝게도 [용수보살전]이 유일합니다. 그마저도 내용들을 어디까지 믿어도 될지에 대해서는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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