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김효순
삭풍(朔風)
-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약소국의 역사가 비극이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 한반도는 제국주의의 전초기지였으며 후에는 이념의 대리 전장이었다.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침략을 가속화 했다. 중국을 조선에서 떼어냈으며 합방 이후 한반도를 병참 기지화시켰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연달아 일으키며 한반도를 2차 세계대전으로 내던졌다. 일제는 미국과의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했으며 최후에는 이등신민 조선인을 징용해서 천황폐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영광을 주었다. 김효순작가는 영광 속에 휘말린 피해자를 찾아간다.
삭풍회
-시베리아 억류자 모임
만주에 징용된 조선인들은 후에 러시아 포로가 된다. 일본군 취급을 받았던 그들은 시베리아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한다. 그들은 귀환 후 삭풍회를 만들어 북쪽에서 느꼈던 바람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다. 복잡한 국제정세는 귀환자들과 머나먼 이야기다. 그들에게 닥친 것은 시베리아 들판이고 가혹한 환경이었다.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필자의 조약한 감상문으로는 온전한 실상을 전하지는 못하겠지만 독자들의 관심은 환기하는 목적으로 적어보겠다.
귀환자 박정의는 “소련군에 항복할 때도 손 안들어 봤고 이북에서도 손들지 않았는데 내 고향 땅에 와서 손들라고 하니 이게 무슨 꼴인가 결국 손들었지!” 하며 자조했다. 당시 한반도는 통일정부가 수립되지 않고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래서 시베리아 억류해있는 조선인을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남한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신원미상의 남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북한에서 보내는 간첩이 아닌지 강도 높은 심문을 했다고 한다. 박정의는 남한으로 내려가기 전 북한군에게 “남쪽 경비병들 눈에 띄면 죽을 수도 있으니 새벽에 조심히 포복으로 넘어가라고 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시베리아 귀환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소련에서는 그들이 남쪽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던 모양이다. 당시 포로수용소는 노동과 함께 공산주의 교육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자아비판을 하면서 반동분자를 가려냈다고 한다. 반동분자가 되면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없어질까 봐 포로들은 열심히 교육을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관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련은 이제 무너졌지만 한마디로 무서운 나라,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까지 하바롭스크에 보내 정치교육을 할 정도니 2, 3년 정도가 아니라 먼 장래를 내다보고 국가기관이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관국은 하바롭스크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당시 받았던 구체적인 내용을 한사코 피하면서 “세뇌시키려 들면 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고 되풀이했다. 반동으로 몰리면 귀환이 늦춰진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귀환자들은 마지막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한국전쟁이다. 김철주는 다시 군대에 가기 싫어서 도망쳐다녔다고 한다. 월남자 이병주 또한 일본군, 카투사, 국군이라는 세 군데 군번을 갖고 있다. 이처럼 귀환자들은 제국주의와 이념전쟁을 모두 겪었다.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그들을 보면 착잡함을 느꼈다.
현재 22년 삭풍회가 어떠한 상황인지는 모른다. 11년 이병주 전 삭풍회 회장은 별세하셨다. 21년 최신 기사에서 삭풍회 회원들은 고령으로 대부분 돌아가셨다고 한다. 30년 이상 지속하던 삭풍회는 곧 해체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들이 스스로 한을 풀지 못했다면 우리가 한을 풀어줄 차례다. 삭풍회는 아직 북쪽의 칼바람을 잊지 못했다.
책은 국제정세 분석과 같은 거시적인 것보다는 미시적으로 접근한다. 생존자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이 겪었던 경험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두서없지만 그런 방식이 더욱 와닿는다. 억류자들의 몇 경험을 풀어내고 짧은 글을 마치겠다. 감상문이랍시고 적었지만 형편없는 글 끝까지 읽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 전 삭풍회 회장 이병주는 시베리아의 겨울이 오면 마차 바퀴를 빼고 스키를 단다고 한다. 말이 똥을 싸면 얼어버린다. 이병주의 눈에는 그것이 꼭 감자같이 보여서 그는 호송병 몰래 그것을 집어갔다고 한다. 몰래 작업장에서 녹였는데 퀴퀴한 냄새가 나서 확인해보니 말똥이었다고 한다.
- 휘문중학교를 나와 징병 2기생으로 입대한 이후녕은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몰래 인근 밀밭에 가서 밀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는 익지도 않은 밀을 반합에 담아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밀이 그대로 변으로 나왔다고 한다. 일본인 포로 가운데는 변에서 나온 밀을 씻어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 유일하게 수기를 썼던 이규철은 수기에서 “식사, 작업, 토론, 대화, 운동, 취침, 오락 등 모든 일에 외톨이가 되어 동료들의 행사에 참여가 금지된다. 따라서 그 고독감은 참기 어렵고 특히 포로 생활이라는 역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심할 때는 귀국자 명단에서 제명된다. 따라서 본의건 타의건 반동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행사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불평불만을 내색하지 말고 명령과 지시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이처럼 소련이 행한 교육에 미적지근한 반응 보이면 집에 가는 날은 더욱 멀어졌던 거 같다.
살다보면 가끔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느끼다가도 역사책을 읽을때면 나는 정말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