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10시, 제가 1분동안 느낄 감정은 오로지 경건함이었습니다.
현충일 날, 사이렌과 함께 묵념을 하며 호국영웅들을 떠올리고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은 곧 휴일을 즐기며 들어가 내년에나 다시 떠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독후감대회에서 호국보훈이라는 말을 보며 하루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에겐 호국이란 단어가 와닿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가 다 아문 나라고 전쟁은 별 현실감 없는 단어일 뿐입니다. 그런 주제를 가지고 막상 글을 쓰려 하니 전쟁소설들로 접했던 전쟁의 참혹함만 떠오르더군요. 글을 쓰다가 스스로 전쟁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소설로 본 전쟁의 단편적인 면만을 쓰는 건 너무 상투적으로 보일뿐만 아니라 취지에도 어긋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호국보훈의 달 행사에 썼던 옛 글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추모와 감사를 드려야한다는 말이 기억났습니다. 별 생각 없이 썼던 그 단어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그 전쟁 속에서 희생을 강요받던 사람들의 처지만을 생각하던 제게 큰 어색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색함은 그들을 단순히 한국전쟁의 희생자로서 보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이유는 사실 예전에 한 소설을 보며 했던 생각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직접적으로 6.25전쟁이나 호국영웅들을 다루지는 않습니다만 제게 한 철학자와 그들을 잇는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김은국의 ‘순교자’라는 소설로서 한국전쟁의 배경속에서 미스터리의 형식을 따라 양심과 신앙사이의 갈등 그리고 실존을 다루는 책입니다. 이 책 속에선 두 군인이 6.25전쟁 직전 평양에서 공산군 비밀경찰에 체포된 열네 명의 목사들 가운데 열두 명의 목사가 사형당한 날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사람들은 어째서 두 명의 목사만이 살아남았는지 의심하면서 열두 명의 순교자를 칭송합니다. 꾸밈없는 문체와 속도감있는 전개로 미스터리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소설이지만 특이하게도 작가가 이야기하는 인간 본성과 보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발견했습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카뮈의 실존주의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지만 저는 책을 읽으며 키르케고르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카뮈와 키르케고르는 같은 실존주의자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카뮈는 부조리에의 저항을 이야기 했지만 키르케고르는 그러한 저항인 윤리적 실존보다 절망앞에서의 연약함, 일종의 체념과도 같은 태도가 윤리 바깥의 특별한 것인 신앙을 통해 고귀한 것으로 승화되고 이러한 종교적 실존이 윤리적 실존에 앞선다고 한 점에서 둘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제게는 소설속에서 신앙과 양심사이에서 갈등하다 신앙을 택한 주인공이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듯 보였습니다.
키르케고르는 비극적 영웅들이 영웅인 이유는 보편적인 윤리를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했기 때문이고 이들이 비극적인 이유는 결국 윤리 안에서 더욱 상위의 윤리와 하위의 윤리를 구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비극적 영웅들은 희생이라는 단어로 이해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살아남은 두 목사 중 유일하게 미치지 않은 한 명은 보편적인 윤리밖에있는 것인 신앙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가 진실을 가리고 배교자를 자처함으로서 열 두명의 목사는 순교자로서 남습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점은 그가 사람들을 속이며 양심을 배반했다는 것이나 그가 국가의 결속 혹은 사람들의 믿음을 위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비극적 영웅과 달리 윤리 바깥에 있는 가치를 위했습니다. 그렇기에 제게는 이 인물이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표상하는 것으로 느껴졌고 희생이 아닌 고귀함으로서 이해되는 인물로서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바탕이 되어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단순히 더 큰 것을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버린, 한국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 참전용사들에게 우리가 애도나 슬픔, 위로라는말 대신 감사와 기억, 엄숙함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윤리 바깥의 특별한 것을 찾아 그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호국영웅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전쟁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생각일지라도 오늘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그 위대함의 일부분이나마 이해한 기분이 듭니다. 6.25일, 오늘이 여러분에게도 그분들의 위대함을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짧은 생각이나마 올려봅니다.
오 결국 하나 더 나왔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