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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어, 생전에 마이너 언어인 덴마크어로 작품을 발표 했으면서 철학사계보에 이름 남기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관점이라는 짧은 저서는 제도권 기독교를 공격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참된 기독교인으로서 관점을 말하였다. 부록 외톨이에서는 대중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진짜 종교문제가 걸리면 순교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법하다. 키르케고르 저서는 기독교를 위하여 순수한 신심만 있다면야 다른 것을 다 포기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영원에 대한 갈구. 그게 어릴 때부터 세뇌된 습성인지 몰라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 믿음과 추구 자체가 인간을 고양되게 만든다는 합리화가 있다. 뭔가 생 전반을 합리화 시켜준다. 정치광신도도 비슷한 모양새를 보이는데, 이념이든 신앙이든 신념일뿐이다. 전부 가설로 봐야할텐데 검증된 것 처럼 군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라 기존 질서에 대한 보수적 유대감이 있고, 새로운 믿음에 대한 실험에 반감을 가진다. 그래도 감정적 동물인지라 변덕을 부려서 바뀌기도 한다.
제도권이라는 것도 그런 이데올로기에 감정적으로 지지하는 관습화 여론화 된 것에 기반하여있다. 그런 감정이 변덕 부리는 걸 싫어한다. 옛말에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였다. 어떤 특별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이 전파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대중을 통속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제도권은 곧 상과 벌의 권위인데, 제도권이 직접하지 않지만 거기서 본받은 통속성이 직접 상과벌을 내린다. 통속성에 반하면 온갖 핸디캡과 패널티를 부과한다. 인간을 상과 벌로 다룬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받는 대상은 상을 필요로 한다면 상과벌을 내리는 주체는 인간을 필요로 하며 인간을 즉잘 부리고 다룬다. 후자가 더 직접적 방식이고, 인간을 갈취하고, 사랑과 겸손이란 것과 거리멀고 교단의 권세를 뿔리는 권위주의적 모습으로 빠지기 쉽다.
권위란게 적폐와 폭압성과 가까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데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아보여도 감정에 기반해있는 한 무너뜨리기도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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