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 작가라 한번 들고와봤음
저승길(冥途 ;명도) -우치다햣켄 1917作
크고 높고 어두운 제방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모르겠고, 그저 매우 조용하고 차갑게 한 밤 중에 뻗어 있다. 그 제방 아래에 허름한 간이식당이 한 채 있었다. 칸테라 빛이 제방의 어두운 사면에 촉촉한 띠를 짓고 있다. 나는 간이식당의 희끄무레한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는 기분이었다. 내 앞의 탁자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다. 허전한 탁자의 광택이 내 얼굴을 차갑게 한다.
내 옆자리 의자에 네, 다섯 명 무리의 손님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때때로 조용히 웃는다. 그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제등에 불을 밝히고 마중 나올 것도 없지, 없고말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왠지 마음에 걸려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어서 곱씹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알았다. 내 말을 하는 것 같다. 나는 화가 나서 그 남자 쪽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놈이 말한 건지 어렴풋해 보여서 알 수 없다. 그 때 다른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커다랗고 울림이 없는 목소리였다.
“뭐,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됐지, 뭐.”
그 목소리를 듣고 잠시 후에, 나는 별안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흘렀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저 지금의 내가 슬퍼졌다. 나는 금방이라도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그 슬픔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는 식초에 절인 당근 잎을 먹고 걸쭉한 야채 즙을 마셨다. 옆자리의 무리도 이번에는 무언가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그리고 나서 때때로 소리죽여 웃는다. 방금 커다란 소리를 낸 사람은 나이 깨나 먹은 늙은이다. 내 눈에, 그림자를 그리며 끊임없이 손짓으로 수수께끼를 내고 동행인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또렷하지 않다.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도 알 수 없다. 아까 무언가를 말했을 때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끔 제방 위를 지나가는 것이 있다. 시간을 나타내는 듯이 나타났다가 머지않아 사라진다. 그 때는 대단히 불길한 조짐에 미동도 할 수가 없다. 모두 입을 다물고 옆자리의 무리는 서로 끌어안는 듯이 몸을 붙이고 있다. 나는 혼자라서 손을 맞잡고 다리를 오므린 채 꼼짝 않고 있는다.
지나가고 나자 옆자리에선 다시 두런두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모습도 말소리도 또렷하지 않다. 그러나 침착하고 조용조용한 단란함을 나는 부럽다고 느낀다.
내 앞으로 장지문이 뒷면을 보이고 닫혀있다. 그 장지 위를 날개가 비틀렸는지 날 수 없는 것 같은 벌이 한 마리,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오르고 있다. 그 벌만이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대단히 또렷하게 보였다.
옆자리의 무리도 벌을 본 것 같다. 방금 전의 사람이 벌이 있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도 나에게는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거 참, 커다란 벌이었어. 말벌이라고 하나? 이 엄지손가락 정도였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 엄지손가락이 또한 나에게는 또렷하게 보였다. 그 다음에 왠지 익숙한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났다.
“유리관에 넣고 종이로 막아놓으면 벌이 관 안을 오르내리면서 윙윙댈 때마다 막아놓은 종이가 오르간 같은 소리를 내더군.”
그 목소리가 점차 또렷해지며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나는 무슨 일에라도 기대어 보는 마음으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서 계산대 위에 두고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자니, 어린애가 와서 달라고 징징거려. 고집 센 애라서, 한 번 말하면 듣지를 않아. 나는 그만 화를 냈어. 유리병을 들고 툇마루로 나오니 정원석에 해가 비치고 있었지.”
나는 볕이 내리쬐고 있는 선박 모양의 정원석을 훤히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돌로 산산조각을 내니 벌이 그 안에서 비실거리며 나왔네. 아아, 그 벌은 달아났어. 커다란 벌이었지. 정말 큰 벌이었다네.”
나는 따스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하고 나는 무의식중에 불렀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가 조용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맞아. 나의 아버지다.”라고 나는 생각하며 그 뒤를 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무리는 이미 그 주변에 없었다.
그 근처를 이리저리 찾아다니고 있는 동안, 그 무리가 일어날 때 ‘슬슬 다시 가볼까?’라고 하던 아버지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그 목소리를 이미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하늘에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제방 위만이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좀 전의 무리가 어느새 제방 위 그 희어진 곳을 어렴풋이 꼬리를 그리는 듯이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속의 아버지를 한 번 더 보려고 했지만, 이미 네댓 명의 모습이 물기를 머금은 듯이 녹아 있고 어느 쪽이 아버지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이 흘러넘치는 눈을 내리 깔았다. 그러자 어두운 제방 사면에 내 모습이 칸테라 빛의 그림자가 되어 비치고 있었다. 그 그림자가 조금 전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닮아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제방을 뒤로 하고 어두운 밭길로 돌아왔다.
이런 단편 너무 좋아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세 번 읽었어요^^
찌고이네르바이젠 원작 단편만 읽어봤는데 죽이더라.. 좀 더 소개되면 좋을 작가..
ㄹㅇ 국내에 그나마 나온책들이 다 수필집 뿐이라서 아쉬울 따름
사라사테 레코드 희한함 그거 읽고 사라사테 음반도 샀잖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