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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구운몽을 허무주의적 메시지로 읽거나, 단순 오락용 연애담으로 읽거나 모두 구운몽에 대한 부적절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구운몽을 연애물로 기대하고 본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실망할 것이다. 구운몽은 내면 심리에 대한 묘사는 단순하고, 또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재밌게 만들어줄 갈등이나 비극이 거의 부재한다. 맨 처음 진 채봉과의 이별을 제외하면, 사실상 양소유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진정으로 방해하거나 막을 수 있는 장애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등장하더라도, 양소유가 쉽게 막아내거나(어족 군대) 저절로 풀리는 것들(황제의 어머니)이다.



게다가 실제로 양소유와 낭자들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부분은 상당히 짧고 소략하다. 요컨대 감정의 오고감이나, 사랑을 위해 헤쳐나가는 여정 같은 건 구운몽의 중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단지 전근대 문학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서상기>를 보라.



물론 그저 허무주의적 메시지로 읽을 수도 없다. 이런 해석이 구운몽의 분량 절대 다수인 양소유의 모험을 그냥 작품 내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치부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큰 문제고, 또 다른 문제는 양소유의 "꿈에서 깸"은 이미 그 꿈에서 반복되고 있던 어떤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소유의 꿈에서 계속 강조되는 화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단일한 것의 다른 존재로의 변화"이다. 가춘운은 양소유를 유혹하기 위해 처음에는 신선의 모습을 가장하여 양소유에게 접근하고, 그 다음에는 귀신의 모습으로 변화한 뒤 양소유에게 다가간다. 마지막에는 그녀가 사실 그냥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때 양소유가 웃으며 말한다: "옛날 어떤 선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겠다고 했는데, 지금 춘운은 아침에는 선녀가 되고 저녁에는 귀신이 되었구나. 구름과 비가 다르지만 결국 한 명의 선녀였듯이, 선녀에서 귀신으로 바뀌었지만 결국 춘운 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양왕은름을 보고 구름이 아니라 선녀라 했고, 비를 보고 비가 아니라 선녀라 했는데, 나는 선녀를 만나 춘운이라 하지 않고 선녀라 하고, 또 귀신을 만나 춘운이라 하지 않고 귀신이라 했으니, 이 점은 양왕의 발끝도 쫓아가지 못하겠구나."



그 외에도 작품 속 모든 낭자들은 모습을 바꾸는 자들로서 나타난다. 진 채봉은 귀족의 딸에서 궁녀로, 계 섬월은 기생에서 승려로, 용왕의 딸에서 인간으로 변하거나, 남자에서 여자로 변하는 예도 있다.



이러한 형태 변환은 자주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사용된다. 앞서의 가춘운의 선녀-귀신 변환이나 난양공주가 정경패에게 의자매를 맺기 위해 공주에서 귀족가 딸로 변신한 것이 그 예이다. 재밌는 건 이 속임이 끝나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날 때이다. 앞서의 양소유의 대사처럼, 사실 정체가 드러나도 속인 자와 속여진 자 간의 관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사랑이나 우정 같은 관계들로 묶여, 형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화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말에서 일어나는 양소유의 꿈의 깸은 꿈의 "허망함"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꿈의 세계에서도 반복되던 구조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 양소유-성진의 형태 변화. 오히려 결말에서 성진의 스승은 꿈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성진에게 "너가 가고 싶으니 가고, 오고 싶으니 온 것이지 그럴게 뭐가 있느냐"는 식의 답을 한다. 이렇게 볼 때 허무주의적 해석이든 오락 소설로서의 해석이든, "선녀를 보고 춘운이라 하지 않고 선녀라 하고, 귀신을 보고 춘운이라 하지 않고 귀신이라 하는" 문제를 빠져나오지 못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구운몽은 이런 책이다-"삼교합일"을 다룬 가장 위대한 문학.



많은 삼교합일에 대한 논의가 그저 "대충 뭐 다들 사람 사랑하고 착하게 살라니까 근본은 같은 거 아니겠음~" 같은 피상적 생각에 그친다. 그러나 구운몽이 포착한 것은 그게 아니라 이 동방 세계 전체에서 나타나는 그 특유의 세계관 자체다. 세계의 지속적 변화는, 오히려 그 변화로 영원한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세계관, 그 무언가는(무언가라고는 하지만) 고정된 사물같은 것이 아니며, 바로 그 "오고 감" 그 자체라는 세계관. 이것은 변화易에 대한 문학이며 진여眞如에 대한 문학이며 도道에 대한 문학이다. 정말 놀랍게도.



대승상 양소유와 보살 성진의 변화는 결국 그 "오고 감" 아래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소설 자체의 외피는 너무나도 소박한 단순 연애담이라 나도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지만, 암만 생각해도 핵심적인 주제는 이게 맞는 것 같다..... 난 종교들 간 합일이라는 아이디어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