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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여름 동안 상연한 링컨센터 극단의 뮤지컬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무대 사진들
-그들이 나를 죽여 버렸어요-
첫날 밤, 처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을에 다시 없을 빛나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혼집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온다. 결혼과 파혼은 각각 산 로만과 앙헬라의 운명에 의해 예고되었고, 두 사람만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다. 파혼과 거의 동시에 산띠아고 나사르의 죽음이 예고되었는데, 산띠아고 나사르와 그의 가족, 사랑하는 친구들만이 그 사실을 몰랐다. 그것이 예고의 아이러니가 집행되는 방식이었다. 죽음의 예고는 죽음을 확정시키는 결과를 낳았지만 실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태어났다. 처음에는, 살인자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살인을 예고했고, -우린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일 거야- 그의 죽음이 그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자 하나님에게 그러하듯이 마을을 붙잡고 빌었다. -우리가 산띠아고 나사르 그 친구를 죽이려고 여기서 기다린다고 그 친구에게 전해라- 마을은 수백 명의 사람들과 같은 단어다. 하지만 마을은, 산 로만, 앙헬라, 산띠아고 나사르처럼, 예고된 운명에 사로잡힌 한 명의 인간처럼 움직였다. 잘못은 누구한테 있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산 로만도 아니고 앙헬라도 아니고 심지어는 산띠아고 나사르도 아니고 마을이다. 개인은 하나의 기회를 갖지만 마을은 수백의 기회를 갖는다. 그렇기에 마을은 결혼이든 파혼이든 죽음이든 예고된 무언가를 무시하고 더 훌륭한 결말을 찾아내는 힘을 가진다. 그것은 운명의 피해자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런데 연대기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나? 반대로 마을은 죽음의 예고를 위해 종사했고, 산띠아고 나사르는 일말의 저항조차 할 수 없이 죽어버린 것이다. 정확히는 운명론에 기반한 마을의 수백 가지 말과 행동이 그의 저항을 무의미한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마을은 예고된 죽음의 피해자가 찬 사슬에 단단히 못을 박았다. 정리하면, 마을은 갈림길 앞에 서야 했다. 모든 집단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두 갈래만을 허락받았다. 구원과 죽음, 혹은 용감한 저항과 무기력한 수용,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는 길이다. 마을은 오른쪽을 향해 걸었다. 그래서 잘못은 마을에게 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나사르가 모르는 그의 예고된 죽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더라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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