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제임스 샌도1에게.

  당신이 나와 케인2에 대해 한 얘기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케인과 비교되는 건 항상 기분이 언짢아요. 내 출판사는 케인이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니 케인과 비교하는 게 좋은 수단이라 생각했지만, 작가로서 내가 잘났건 못났건 나는 케인과는 전혀 다릅니다. 케인은 내숭 떠는 작가죠. 내가 특히 싫어하는 부류예요.

  당신은 “평론가들이 ‘소설’과 탐정소설을 차별하는 행태로 인한 불이익에 대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어쩌다 한 번씩 탐정소설 작가도 작가로 대접받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거죠. 첫째, 탐정소설은 대개 형편없이 쓰인 게 많아요. 둘째, 탐정소설의 주 판매처는 상업적인 독서 서비스에 의존하는 유료 대출 도서관들이고, 평론에는 관심이 없어요. 셋째, 내 생각이지만 탐정소설은 마케팅이 잘못됐어요. 사람들이 탐정소설에 영화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리라는 건 터무니없는 기대죠. 넷째, 탐정소설 또는 추리소설의 형식은 그간 너무나 철저하게 탐구되어서 오늘날 작가들은 추리소설처럼 보이면서 추리소설이 아닌 글을 쓰는 데만 몰두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유효하든 아니든, 작가로서 근본적인 분노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왜냐, 사류쯤 될까 싶은, 구성도 엉망이고 진지한 척이나 하면서 저 멀리 남쪽에서 목화 줍는 무리의 인생을 다루는 작품에는 한 단段 하고도 반이 넘는 정중한 관심이 주어지는 반면에, 추리소설은 아무리 잘 써도 고작 한 문단으로 다루어질 테니까요. 내가 아는 나라 중엔 프랑스 사람들만이 유일하게 작품을 작품으로 봐 줍니다. 영국인들은 소재를 우선하고, 그다음에야 작품성을 따지지요. 그다음이라는 게 있다면 말입니다만.

 

  (1944년 1월 26일)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레이먼드 챈들러, 안현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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