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적으로 노벨상에 별 관심이 없는데 화학상, 물리학상, 경제학상이야
그쪽 분야를 별로 읽지를 않으니 그렇다 치지만
시, 소설은 꾸준히 읽는데 문학상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안 생기더라고.
매년 하는 이벤트로 모르던 새로운 작가를 한둘 소개해주는 건 괜찮은데
소개하면서 수식하는 방식에 있어서 예를 들어
식민지배, 제3세계, 여성, 인종문제, 빈궁하고 소외된 자,
전쟁 재난 억압의 기록...
이렇게 들이대면 머릿속에서 뻔한 짐짝처럼 포장되서 밀쳐 두게 되더라고
막상 입수해 들여다보면 새로울 수도 있는데,
임레 케르테스나 프리모 레비처럼
레비는 수상자가 아니긴 하지만
미루고 미루다 입수해서 눈앞에 댈 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
‘아우슈비츠’
이렇게 딱지가 붙으면 어짜피 내가 같이 아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물질에 대해 안전한 선입관으로 뭉뚱그려져서 말이지
작년에 수상한 아프리카 작가
굳이 검색을 하지 않으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잘쓴 작가니까 상을 줬겠고
막상 읽으면 나쁘지도 않겠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도 그렇고 별 관심이 안생겨
그럼에도 노벨상과 관련해 언론들이 떠들어대니까
수상 태도와 관련해 주워듣는 게 있고 기억에 남는 것도 있어
하나는 베케트, 다른 하나는 앨프리데 앨리네크
베케트는 상과 상금은 받았지 근데 수상을 하러가지 않았다는 게
그 무관심의 적당거리가 힙 하더라고
가는 것이 귀찮았다는 게 아닌가
<말론은 죽다>를 읽으면서 베케트가 양로원에서 어떻게 죽었을까
읽는 중에도 그렇고, 읽은 다음 한참이 지난 후에도 여러 번 생각했는데
자기가 쓴 대로 죽지는 않았을 거 같아
다가오는 것은 늘 조금씩 예상 밖이니까
앨리넥은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한트케가 받았어야 했는데’ 라고 했지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 하기 쉽지 않을텐데
앨리넥 소설은 서너 권 사놓기만 하고 아직도 안읽었지만
하네케 연출의 피아니스트는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위빼르 연기도 그렇고
좋았지 황폐하고
쓸데없이 기운이 넘치는 법도 없지만
앞뒤 없이 찌르고 들어오고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하네케 까지 포함해서
오스트리아는 건조하고 독살스러운 작가들이 모여사는 곳인가 각색되버렸음
사르트르는 바보 같았어
까뮈가 마흔 네 살에 최연소로, 자기보다 상을 먼저 받은 거에
심통을 부린 거는 아니었겠지만
그 이유가 전혀 작용하지 않았을 거 같지는 않고
누가 봐도 사르트르의 철학책이나 비평이나 희곡이나 소설이
까뮈 보다 못한 게 아니지만
상을 안 받는 이유를 대면서 서유럽 부르주아 사회의 편향이 어쩌고 저쩌고
숄로호프보다 파스테르낙이 먼저 받은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나
이런 성명서를 쓰고 늘어놓는 게
별로 멋지지가 않은 거 같음
몇 년 후에 베케트가 상금만 받은 사례를 보고 느끼는 게 있는지
늦었지만 자기도 상금을 줄 수 있냐 물어본 것까지 지저분하고
단순 솔직함을 넘어서
인간을 광물질처럼 전시하고
인정머리 없을 정도로까지 눈앞이 명료해지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에는 부합한데
이때 이 태도로는 멋지지 않음
마르케스는 어느 에세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수상하고 얼마나 오래 생존해 있는지
10년 이상 사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 였나?
반쯤 장난스러운 글을 썼는데
좀 깨더라고
이 사람에게는 상이 분에 넘쳤고 영광스러웠구나
살짝 누추해보이는 계기였음
얼마나 빛이 났던가 그 기억에 정념이 쏠려서
지 수상과 관련한 이야기의 사진 주변으로
여중생처럼 별이나 하트 스티커 따위를 붙이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