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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기에 앞서 여자의 일생과 마트 이야기 스포를 마구마구 해댈 것을 밝힘.


1.


여자의 일생의 주인공 잔느는 초반 30p 이후 불행만을 겪는다. 300p 가량 말이다.


잘생겨 낚여서 결혼했던 남편은 본능에 매우 솔직한 인물이라


본인의 지위는 유지하면서 성적 쾌감을 극도로 즐길 방안만을 모색하며,


오직 돈을 아끼는 것이 스스로 그가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살아간다는 말보다는 살아진다는 의미에 가까운 인물이다.



2.


잔느는 남편에게 데여 자식에게만 집착하게 되고,


그런 자식은 당연한 듯이 방탕하게 자라서 집안을 기필코 말아먹는 데 성공한다.


온갖 불행으로 나이보다 더 늙고 연약하고 무지하게 자란 데다 의지할 사람이 모두 사라진 잔느의 앞에


하인이었던 여인이 나타나서 구제를 해준다.


그녀는 잔느의 남편의 노리개였으며 아이를 낳았고, 잔느 가족의 비호 아래 농장을 경영할 남자와 함께 잔느를 떠나게 되었다.


돌아온 그녀는 은혜를 갚기 위해 잔느를 보살피며 결국 잔느의 아들이 남긴 손자를 잔느에게 안겨주며


'일생은 생각만큼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거라구욧!'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3.


더불어 돌아온 하녀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왜냐면 남편의 노리개였던 그녀가 농장을 경영하며 배운 감각으로 잔느와 관련된 모든 일을


주체적으로 모든 일을 해내며 마땅히 갚아야 할 도덕적 빚을 갚는 위치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4.


여자의 일생은 개인의 슬픔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주체성을 박탈하였으며, 주체성을 찾아낸 자만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지위, 계급의 지위가 등장인물들의 기묘한 비열함을 부추겨왔기에 그들은 스스로 그 비열함을 감추기 위해


노력한다.


잔느의 아버지는 귀족으로서 예쁜 하녀만 보면 떡치느라 정신 없었던 게 찔려서 잔느의 남편을 핵갈굴 수 없었고


잔느의 어머니는 귀족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게 재미보는 것인 줄 알고 있었기에 웃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잔느의 어머니의 위치에 그런 바람기가 실제로 위협이 가해질 수 있었다면 결코 웃어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자각이 그들을 방자하게 만들었고 그 방자함이 결국 잔느를 제외한 동물의 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어머니도 바람핀 적 있고, 남편은 거의 동물이고, 학식있고 자상한 아버지도 젊어서는 고추만 세우고 다닌 듯하고



5.


하지만 여자인 잔느는 이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경제력이 없었으며 무엇인가를 경영하는 교육을 받지 않았기 떄문이다.


따라서 잔느와 대비되는 돌아온 하녀가 암시하는 바는


성별에 관계없이 경제력을 갖춰야 되고 무엇인가를 주체적으로 해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일 것이다.



6.


버트런드 러셀은 결혼과 도덕에서


금기를 정하면 그 금기를 어긴다는 쾌락에 몰두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여자와 남자, 평민과 귀족으로 어떠한 굴레를 나눈다면


그 굴레를 정당화하기 위해 당위성을 끌어들일 것이며,


그 당위성을 어기는 것이 바로 금기가 될 것이다.


'천민이 어딜 감히' 라거나 '여자가 어딜 감히' 등이 그것이며


결국 그들을 노리개 비슷한 존재로 만들고 본인들이 만든 도덕을 그들을 상대로 어기며


그 쾌락에 종속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는 상호간의 존중심이 남녀 사랑의 본질이 분명하며


그 존중심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의 사회 제도롤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7.


그렇다면 존중이란 무엇인가?


이영도의 마트 이야기. -시하와 칸타의 장-은


내 감상으로는 현실에 대한 패러디이다.


남자처럼 행동하며 현실을 비관하는 시하와


여자처럼 섬세하게 행동하는 비사회적인 게이 칸타.


시하는 칸타를 사랑하며 전투에서 그를 살리기 위해 그에게 가서 도망가자고 말한다.


'게이' 칸타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낳지 않은 너의 아이가 될 수는 없다, 네가 날 항상 사랑해줬으면 싶거든.'이라 답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시하는 마지막에


먹은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하는 '사랑의 묘약'을 칸타에게 먹이지 않고


자신이 먹은 채로 칸타를 만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상대의 운명을 지배하지 않으려 하며, 또한 상대가 선택하기를 배려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그게 바로 존중일 것이라고 저자 이영도는 현대의 남녀를 표현한 인물들로 암시하는 듯하다.


주체성을 가진 자들(현대의 남녀)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ps.길게 쓰면 마트 이야기와 결혼과 도덕이 좀 심하게 양이 많이 나올 거 같아 대충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