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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울하고 좆같은 소설이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던 건


물 흐르는 전개와 더불어 개연성 있는 인물들의 행동 양태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챕터로 가면 슈퍼 하드 캐리를 하는 로잘리를 제외하곤 아무래도 전개가 단순해지지만


전반부의 전개는 인물들의 입체성이 생생해서 놀라웠고,


내 생각엔 분명히 본인이 겪은 인물들을 빼다 박아놨다고 본다.


이 책의 원제는 '일생'이라 한다. 여자의 일생은 일역판인데 덕분에 돈 좀 벌었을진 몰라도 잔느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게 조명이 안가는 점은 아쉽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자의 일생이라 쓰는 건 그런 채로 굳어버렸기 떄문에 쓰기로 했다고 한다.


민음사 역본으로 읽었는데 역자의 작품해설은 상당히 평면적이라 아쉬웠다. 번역은 참 잘하신 듯.


으쩄든 스타트



1.


남편은 참 동물같은 인물이다.


이 인물은 '가지게 해선' 안 되는 인물이다.


가지는 순간부터 본인부터 허물어진다.


이러한 인물들은 폼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폼 잡고 싶은 욕망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잘나보이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은 살아있다.


언제나 대세를 따라 움직이며 사실 생각이라는 걸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폼을 잡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인물은 피마새의 스카리 빌파로도 접할 수 있다. 즉, 현실에서도 자주 보이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인물이 입체성???이라고 말한다면


그의 수전노적 성격을 봐야 한다.


폼나고 싶은 게 인생목표인데 본인들이 그런 줄도 모르는 양반들은 마약이 있는 곳에선 마약을 하고 술이 있는 곳에선 술을 먹는다.


말하자면 풀어주는 순간부터 바로 망가진다.


하지만 그런 남편의 인생을 붙들어 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악착같은 금전에 대한 집착이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실 수 없다, 왜냐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구제불능으로 타락하진 못한다.


그는 돈을 아끼는 것이 직업이므로,  나머지 좆같은 행동들을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다.


'나는 일했으니까 휴식해도 되지'라는 마인드인 것. 이렇게 보면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돈쓰자고 자꾸 말하는 잔느의 가족들은 기본도 안 된 놈들인 것이 드러난다. 


그렇게 간신히 일만 하면서 버티고 있는데 '가지지 못하는' 백작의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난다?


발작버튼 눌리는 것이다.


이 인물을 동물로 비유한 것은 다름아니다. 예측한 대로 무조건 흘러간다. 욕망에 대한 저항 자체가 없는 인물이기 떄문이다.


동물이라기보다는 굶주린 동물이라는 말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기도..




2.


다음으로 어머니인 남작부인이 있다.


남작부인은 선량한 인물이다. 아량도 있고 도리도 나름대로 지키긴 한다.


하지만 남작부인의 본질은 '충돌회피'에 있다.


언젠가부터 소위 회피형 인간들이라는 존재가 슬금슬금 거론되어 왔는데


행동양태는 다를 수 있어도 몰라도 행동의 근원은 같다.


그냥 본인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선택지를 극도로 꺼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남편의 외도를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웃어 넘길 수 있던 것이다.


물론 남편의 외도가 하녀를 대상으로 떡이나 치는 것이니 용인 가능한 거였겠지만


남편을 미워하기보단 그냥 그것이 남자라는 동물이라고, 또한 삶의 묘미라고 생각해버리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잔느의 이혼 문제가 대두되었을 땐 훌쩍이다가


타협안이 나오니 싱글벙글하며 나서는 것이다.


그녀의 바람에 대해서는 바람피웠다는 정도만 제시되므로 어떻게 해석을 할 수는 없다.




3.


줄곧 여유있는 존재로 등장한 아버지인 남작은 본인의 치부를 떠올리자 불안해하며 우왕좌왕한다.


이혼을 시키려 왔는데 생각해보니 본인도 하녀 상대로 떡을 그렇게 많이 적극적으로 친 것이 드러나며


사실 깨끗한 척하면 아무도 모르는 건데 혼자 그거가지고 덜덜 떨며 3세 지능 수준인 남편에게 논쟁에서 밀린다.


자신의 치부를 직시하지 못하는 인물상인 것이다.


소위 위선자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선자라고 해서 모든 행동이 다 위선인 것은 아니며, 다만 그 자신의 위선을 못받아들일 뿐이다.


귀족으로서만 살아왔기에 아래가 보이기 시작하면 허둥대는 사람들,


현실로 치면 엘리트로서만 살아왔기에 아래가 보이기 시작하면 허둥대는 것이다.


현실 정치판에서든 어디든 쉽게 보이는 인물상이지만


그렇다고 그 위선 때문에 그의 모든 삶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귀족스러움을 정당화하는 행동을 할 때는 그야말로 용기있는 인물이다.


그가 매우 이기적인 신부를 만나서 그를 혼내주는 것은 그의 말년에 다시 되지펴진 불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신부와의 갈등을 통해 다시 안정감을 찾았을 것이다.




4.


또한 중재를 잘하는 신부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잔느의 이혼을 막는 나쁜놈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세상사에 도통해서 갈등을 안만드는 도사같은 인물이었다.


이 인물이 왜 재밌냐면


잔느의 가치를 꺠달았기 때문이다.


그 순수함을 진정 경애했기에 잔느에게 충고해주는 그 때에는


권모술수로 가득 찬 속인의 탈을 쓴 신을 모시는 사제의 역할을 해냈기 떄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잔느를 통해


순수함을 다시 체감했기에 잔느를 진정으로 아꼈던 것이다.




5.


신부의 이야기를 해서 새로온 신부, 이기적인 이 양반은


작품의 숨겨진 세번째 비판대상이다


첫째로, 신분제


둘쨰로, 남녀차별


그리고 바로 종교인 것이다.


종교를 위한 종교를 표방한 그는, 엄격해보이지만


사실은 본인을 위해선 한없이 관대하며


사적인 감정으로 남들을 욕하고 몰아세우는 것을 본인의 업으로 삼는다.


만약 남편이 신부가 되었다면 딱 이러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종교를 위한 종교'를 표방하는 게 폼잡기에 딱이라 그렇게 하고


본인이 일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은 그의 적대세력인 것.


그러므로 그는 교육은 받았지만 그냥 남편처럼 이기적인 인물이다.




6.


마지막으로 잔느의 차례인데,


잔느는 로잘리의 말대로 '결혼 한번 잘못했을 뿐'인 게 맞다.


좀 유약한 면이 있지만


강해질 면모가 분명히 돋보였고


누구보다 순수했으며


사물을 꿰뚫는 통찰도 어느 정도 지녔고


무엇보다 사랑을 할 줄 안다.


그렇기에 첫번째 신부가 경애한 것인데,


문제는 성별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결혼 한번으로 나락을 간 것이다.


잔느는 말하자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은 그것을 되새기며 비참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교통사고든 뭐든 사람은 살아야 한다.


잔느에게 부족한 것은 그것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


그것은,


그와 같은 젖을 먹고 자랐던 하녀 로잘리가 되돌아와 그녀를 보살피며 명백히 드러난다.


후반부를 슈퍼 하드 캐리하고 결국 잔느의 손자인지 손녀인지를 잔느에게 안겨부며


로잘리는


'삶이라는 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구욧!!'하고 외치는데


그것은 본인이 선택하기에 따라 달린 일이기 떄문이다.


나쁘고 좋고는 없고,


그저 본인이 선택하는 삶이 있으며


잔느에게는 '손녀인지 손자인지 모를' 새로운 교통사고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말년의 잔느에게도 아직


'삶이라는 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구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