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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최근 유튜브에서 난쏘공을 각색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눈과 귀를 씻고 싶을 정도로 쓰레기 같았다. 배우들의 열연이 아니라면 진작에 껐을거다. 난쏘공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대본이랄까? 연작의 모든 내용을 꾹꾹 담아내려다 아가리가 찢어진 작품이다. 혹시나 궁금하다면 절대로 보지 마라...

 

 각색하면서 주제가 퇴색한 덕분으로, 댓글도 역시 막장이더라. 단순히 철거민들의 '감성팔이'로 바라보며 원작을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더라. 이에 매우 분개하여 오랜만에 난쏘공 연작 시리즈를 읽고 그 작품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보고자 한다. 누구들 말처럼 언더도그마인지 아니면 사회 구조를 분석한 통찰력을 보여주는지. 


2. 이항대립 구조와 뫼비우스의 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 시기의 소외된 계층의 전형을 상징하는 난장이와 이들과는 반대편에 위치하며 경제 권력을 지닌 상튜층의 전형을 상징하는 은강그룹이 서로 대립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갈등과 대립이 소설의 서사를 이룬다.

   

 이 두 집단은 우선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다. 개천과 터널을 기준으로 한 쪽에는 난장이 가족이 다른 편에는 부유층이 거주한다. 이들의 계층 구분은 단순히 공간의 구분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난장이 가족에겐 있고, 그들에겐 없는 것 혹은 그 반대의 서술로 표현된다. 주머니 달린 옷의 유무, 교육과 사교육의 유무, 윤호네 집에 설치된 냉방기와 공장의 더위 등 빈곤이나 부유로 인해 생겨난 격차들이 대립한다. 그들의 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대립이 발생한다.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윤호에겐 사랑이 없더라도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이 당연하고 그들끼리 모여 영상을 보고 약을 하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서술되지만 난장이의 가족인 영수는 동생 영희가 옆집 명희와 사랑한다는 낙서를 보고 쑥쓰러워하고, 명희의 가슴을 만지는 행위만 묘사된다. 이렇게 두 집단은 명확히 구분된다. 부유층과 소외된 빈곤층, 불순과 순수, 평화와 전쟁 등으로 대립된다.

 

 이 계층에 직접적으로 해당되지 않음에도 나머지 인물들의 경우, 마찬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중산층에 해당하는 신애의 경우 자신들도 난장이라는 표현을 통해 난장이의 집단에 해당함을 나타냈고 현실과 타협하여 대학시절의 투쟁을 잊고 교수 밑에 들어간 신애의 동생 친구의 경우 난장이와 대립되는 집단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윤호와 영수를 깨우쳐준 지섭도 난장이의 집단에 해당한다. 윤호의 경우도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궤도회전>에서 은강그룹의 회장 딸인 은희에게 부유층의 죄를 일러주며 난장이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으로 볼 때, 난장이의 집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항대립에만 집중해서 서사구조를 살펴본다면, 난장이 집단인 영수의 저항이 좌절되면서 소외된 계층의 비극성이 강화되면서 마무리된다. 즉 두 계층은 화해를 하지 못하고 양극단으로 분리되어 대립은 지속될 것으로 비춰진다. 이는 마치 작가가 소설 초반에 또 중반에 제시한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씨의 병과 유사하다.

 

 뫼비우스의 띄는 직사각형을 틀어서 만든 형태이기에,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다. 고로 시작과 끝의 갈피를 잡을 수 없고 그 굴레는 계속 반복되어 빠져나올 수 없다. 두 집단의 대립이 이와 유사하다. 산업화로 비롯된 두 계층의 대립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누가 더 갈등을 점화시켰는지 구분할 수 없다. 입주권을 팔았지만 주거지를 잃어 피해자가 된 앉은뱅이와 꼽추는 자신들의 입주권을 판 사내를 공격하면서 가해자가 된다. 반대로 사내 역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신분이 바뀐다. 두 집단은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난장이 가족도 마찬가지다. 영수는 산업화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피해자였지만, 은강그룹 회장의 동생을 살해하면서 가해자가 돼 버린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두 집단도 누가 피해자인지, 혹은 가해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이번엔 기계 공장이 심상치 않다는 서술을 볼 때, 지섭은 기계공장으로 향해 또 다른 대립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고, <에필로그>에서도 약장수에게 버림받은 앉은뱅이와 꼽추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배를 갈라버린다는 표현을 볼 때, 또 다른 복수를 다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뫼비우스의 띠와 마찬가지로 두 계층의 대립은 다른 형태로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 산업화로 인해 생겨난 사회구조는 양극단을 만들었고 양극단의 대립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지만,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한 두 집단의 대립의 구조 속에서 폭력은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3. 독특한 문체와 조세희의 시선


 본 작품의 서술 방식은 난해한 편에 속한다. 이상 만큼 텍스트 자체가 난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문체가 독자를 어지럽힌다. 도대체 이 사건이 현재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과거 회상인지, 아니면 단순히 환상 속의 일인지, 독자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환상이 작품의 기저에 깔리면서 아이러니하게 현실을 더 지독하게 보여준다. 아무래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난장이의 자살이 아닐까 싶다. 달나라를 향해 비행기를 날리는 그의 모습은 희망에 차 보이면서도 철저하게 현실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잔혹할 정도로 현실을 묘사한 본 작품은 그럼에도 아름답다. '소외 계층의 감성팔이' 따위로 현실을 조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위에서 언급한 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 구조는 단순히 계층 사이의 을 넘어서 사회 구조가 지닌 모순을 보여준다. 


 누가 그러더라.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현실에 대한 폭로가 작가의 몫이라면, 해결책의 제시는 현실에 대한 폭로를 목도한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싶긴 하다만, 무튼 조세희는 나름 그 타개책을 소설 내에 제시했다. 두 계층은 충분히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주었다.


  중산층인 신애는 난쟁이는 아니지만난쟁이의 신세를 이해해주었고 상류층인 윤호는 물론 모순된 행동을 보이지만상류층의 허위를 비웃으며 난쟁이의 처지에 공감해주었다은강그룹 회장의 동생의 자식인 경훈의 사촌형도 마찬가지다자신의 아버지가 소외 계층에 의해 피살당했지만소외층에게 혜택을 주었다면서 소외층을 비난하는 경훈을 비웃으며 그들의 처지를 공감해주었다단순히 가해자가 누구고 피해자가 누군지를 보려하지 않고왜 이 사건이 생겨났는지를 지켜보며 노동자들을 괴롭혔고그들을 소외시켰다며 은강그룹이 잘못했음을 지적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났다.


 이항대립의 구조에서 벗어난 시선을 지닌 인물들의 등장은 분명 의도된 장치로 보인다. 특히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도형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본 작품에서는 더욱이나 그렇다. 위 인물들처럼 소외된 계층에 대한 공감 어린 시선이 양 계층을 단순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선악구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통해 서로의 이해타산을 파악하고 상황을 조망한다면 양극단의 대립은 소통을 통해 화해로 이어질 수 있다


 양극단에 대한대립되는 집단에 대한 인식은 필요하다허나 양극단의 대립에서 어느 한 누군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를 들으면서 공감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대립양상을 지켜본다면 그러니까 단순 이항대립 구조에서 벗어난다면 우리 사회가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