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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강연: 실천윤리학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것과 책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우리는 작가 논지의 옳고 그름을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 쉽게 재단하지만, 막상 자신이 작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번거로움과 개인 사정, 주변 시선 등의 이유를 대며 자신의 판단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기를 주저하거나 아예 기존의 판단을 뒤집어버리는 일도 결코 적지 않게 일어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책임을 최대한 떠맡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고수함으로써 지켜낸 소신이라는 자그마한 훈장은 자기만족 이상의 것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이 훈장은 삶을 옭아매는 거추장스러운 허울로 작용한다. 이 시점에 도달한다면, 훈장은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처박히거나 더 심하게는 아예 박살나버리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굳이 이 불편한 현상을 독후감의 서두에 꺼낸 이유는 내가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 역시 몇 명의 소신 있는 사람들에 속하지 못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나는 과거 읽었던 『플라스틱 사회』라는 책에서 지적한 플라스틱의 범지구적 남용을 머릿속으로는 긍정했지만 그것을 어떠한 실천의 형태로 지지하거나 찬동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전적이 이미 있는 사람이며, 오늘 소개할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역시 이미 『플라스틱 사회』라는 책을 대했던 것처럼 표리부동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을 책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고백하는 이유는 내가 싱어의 의견에 찬동한다고 해서 싱어의 주장에 쉽사리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핑계로 짓밟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싱어는 실제로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채식주의를 수십 년 동안이나 지키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이것은 소신을 위해 갖은 오해와 불편을 계속 감수해나가고 있는 싱어가 대단한 것이지 적당히 세상에 맞추어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겁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부터가 그러한 사람이니까.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은 우리가 동물권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꼬집은 책이다. 우리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과 공장식 축산업이 동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야기하는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혹여나 짐작하더라도 사람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희생으로 여기고, 실험과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그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운영하고 있겠거니 등의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싱어는 이 근거 없는 믿음에 맞서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자행되며, 어렵사리 도출한 연구 결과가 막상 사람이라는 종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사람들의 통념과 다르게,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이익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무조건 동물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실험’은 지극히 적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공장식 축산은 어떠한가?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육질의 가축들을 기르기 위해 닭에게 날개를 채 펴지 못할 정도로, 또 여타 가축들이 마음껏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비좁은 우리에 가두는 것이 공장식 축산의 기본이다. 각자 ‘농장’이라는 단어를 연상해보자. 우리의 상상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으레 오웰의 『동물 농장』에 등장하는, 건초와 물이 충만한 환경에서 여러 종류의 동물이 지근거리에서 함께 뛰노는 전통적인 농장이지만, 이러한 형태의 농장은 더 적은 투자로 더 많은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적합하지 않아 사장되었다. 우리의 막연한 상상과는 다르게,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고기들은 극도로 삭막하고 비인도적인 곳에서 생산된다. 싱어는 모두가 자신처럼 채식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다수의 행복에 기여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된 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고 단언했다. 공장식 축산이 야기하는 동물 학대는 그만큼 막대하고 심각하다.
『동물 해방』에서의 피터 싱어는 생명윤리학자로서의 인상이 강해 보이지만, EBS 강연을 통해 만난 싱어는 생명윤리학자 이전에 공리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사람들만을 공리주의의 대상으로 삼는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과 다르게, 그는 공리주의의 울타리 안에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을 전부 포함시켰다. 싱어에게 울타리 안에 동물들을 들여보내주지 않는 행위는 지극히 ‘종차별’적인 행동이었다. 싱어는 자신의 울타리를 흉보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어쩌면 과거 백인이 유색인종에게, 귀족이 노예와 평민에게 가졌던 악감정을 되풀이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으며, 지능을 이유 삼아 동물을 울타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울타리에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도 단언했다. 종의 차이를 꼬집지 않고 사람과 동물 사이를 완벽하게 긋는 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에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물과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생물이라는 이분법만큼 확고한 기준은 없었다.
이러한 싱어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싱어가 주장하고 실제로 행하고 있는 공리주의의 지엽적인 부분은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하더라도, 모든 생물의 고통을 최소화하자는 싱어의 기본 전제에 반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허영심을 위해 채식주의를 숭상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특정 동물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 내로남불이 싱어와는 무관하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싱어는 자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개와 고양이에게 가해지는 학대에는 치를 떨면서도, 원숭이와 쥐가 학대당할 때에는 무던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공리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와 돼지는 잘만 먹으면서도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부 개빠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동물 보호가 종차별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척 젠체하는 작자들의 실속 없는 간판과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감정을 배제한 채 논리적인 어조만 사용하기를 고집했다. 그가 걷고 있는 길은 너무나도 험난한 길이기 때문에 많은 동반자를 만들진 못할 것이 자명하지만, 적어도 싱어라는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행동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사상에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러한 지고지순한 노력 자체는 충분히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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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혜적 해방이 아닐 수는 없지. 사실 이 책이 80년대 책이라서 지금의 시대상과는 잘 안맞는 부분도 크다고 생각해. 거의 40년의 간극이 있는 셈인데... 요즘은 실험과 공장식 축산이 그때만큼은 가혹적이지 않기도 하고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동물 실험을 되풀이하는 기업들에 대해 극렬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소비자층도 생겼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니까 독후감에 80년대와 20년대의 차이를 썼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드네..나름 책이랑 강연 내용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딴건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편이 더 나았겠다
검색해보니까 70년대네. 그 때 당시에는 시혜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조차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절도 아니라 동물 학대에 대해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니까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호소와 고발이라는 형태로 문제점을 지적하게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드네. 좋은 의견 고마워
http://wiv.kr/PDpzc
멋진글. 동물해방을 읽어보고 싶네요 - dc App
고마워요
감상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