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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신문의 2020년 6월 여론조사에서, 징용공 문제를 둘러싼 일본정부의 주장에 79%가 지지한다, 대체로 지지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일본인의 상당수는 한국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그 논리가 일본인의 상식과는 차이가 너무나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의 상당수는 조선이 근대화된 것은 일본 덕이다, 일본의 병합은 문제는 있었을 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합법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
역사적 인식의 차이가 너무나 큰데, 저자는 한일 병합 조약으로 시작하여 전, 후의 한일간의 역사적 사건 여러 가지를 들어 이러한 차이점이 왜 발생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가 다루는 사건은 한일병합, 을사늑약, 의병 투쟁, 동학 농민 운동, 관동대지진에 이르는 사건들이다.
의병 투쟁 당시 한 대한제국 거주 일본인의 발언을 인용해 보자.
"이런 자들(의병)에게는 일본의 매운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산악 지방의 한국인은 아직 일본군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들은 일본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한다."
실제로 이른바 '폭도 토벌 작전' 을 기록한 일본측의 <조선 폭도 토벌지>에서도 이러한 초토화 작전이 언급되고 있고, 지나1친 강경책이 한국인들의 반감을 샀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기록하고 있다. 의병 투쟁에서 2,852회의 충돌이 일어났고, 17,779명의 의병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일본군 전사자는 136명에 불과한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그런데 2만여명의 사망자가 난 전쟁을 일본 역사에 비교해 보면, 1868~1869년의 '보신전쟁'에 맞먹는 사상자라고 한다. 보신전쟁의 피해지였던 아이즈 지방(후쿠시마 일대)에서는 지금도 보신전쟁을 뼈아픈 역사로 기억하고 잊지 못하고 있으니, 한국인들의 감정이 어떻겠느냐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동학 농민 전쟁에 있어서도, 사실상 학살과 방화의 기록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이것이 청일전쟁 전사(戰史) 기록에서는 아주 소략하게만 언급되고 있고 일본군의 범죄 행위는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관동대지진의 경우 저자는 이것을 일본군 복무 제도와 연결짓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갑작스럽게 동시다발적으로 우연히 생겨난 것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일본인의 '자경단'에 대해서, 이것이 실은 기록을 보면 1918년의 쌀 소동에 놀란 일본 정부가 경찰 조직을 시켜, 이미 그 골격을 갖추어둔 상태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미증유의 대재해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생계가 곤란한 상황에서, 한두 곳도 아니고 광범위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자경단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이는 이미 그 조직 자체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설명이다.
또한, 조선인에 대한 학살이 손쉽게 이루어졌던 것은, 그 자경단원 중 상당수가 '재향군인회' 소속으로, 당시 일본군 경력자 중에는 상당수가 한반도에서 근무한 경험과 한반도에서 학살을 자행했던 경력이 있었기에,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인명 경시 풍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관동대지진 학살에 대한 건을 살펴보면, <요코하마 시 진재지>에 기록된 요코하마의 조선인 살해로 기록된 사례는 단 1건이다. 그 판결은 징역 2년, 그나마 집행유예. <가나가와 방면 경비부대 법무부 일지>에 기록된 것을 보면 형사책임을 진 사람은 1명도 없어서, 이 지역에서 법률적으로 학살은 사실상 없었던 것이 되어 있다. 38건의 자경단 관련 사건 전반을 살펴보아도, 살해 유죄판결률을 보면 조선인 살해로 기소된 경우 16.5%가 실형을, 일본인 살해로 기소된 경우 59.3%가 실형을 받아 차이를 보인다.
3.1 운동에 대한 기록도, 수상 집무실의 내각서기관실 보존 문서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우연히 '채여 공문'(중요하지 않은 공문으로, 1년 보존 기한으로 파기되는 공문)철 중 왜인지 남아 있었던 공문철 속에 그 기록에 조금 섞여들어가 있었던 것이 전부인데, 상식적으로 3.1운동같이 중요한 건이 공식 문서로 보존되지 않았다는 것은, 의도적인 파기와 조작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설명이다.
그리하여 책임을 묻지 않고, 반성도 없고, 애매한 채로 방치하여 유야무야되어 언젠가 잊혀지는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 일본 측의 대응이었는데, 사실 이것이 현재 일본의 정치적 태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쁜 것은 일본 정부와 군부였지 일본 인민이 아니다'라는 주장에도 실상 큰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중국인 교수의 증언이 인용되어 있다.
'나쁜 것은 군국주의자로, 일본 인민도 희생자였다고 배웠다. 1980년대 초에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우에노 공원에 꽃놀이를 갔는데, 거기에서 나이가 든 남성 단체석을 본 일이 있었다. 들리는 얘기를 들어보니 그 모임은 이른바 전우회 모임으로, 거기서 하고 있는 얘기는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무용담이었다. 일본 민중은 희생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나쁜 일을 했다는 자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즉, 쇼와의 편협한 군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메이지나 다이쇼 시기의 일본은 정당했다는 것이 일본 대중의 일반적 역사인식이라는 것,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은 사실을 조작, 기록을 처분, 기억을 망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심어준 것이 대체적으로 역사 소설의 책임도 큰데, 가령 요시무라 아키라의 <관동대지진>,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과 같은 역사소설이 바로 그것으로, 물론 이들은 그들의 시대적 한계 안에서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기는 하였으나, 이것들이 현대 일본인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큰 쐐기를 박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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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광범위한 일본측 자료 및 한국측 자료를 종합하여 '일본의 역사 인식은 조작된 것으로, 실제 역사와 큰 차이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대체적으로 일본인이 품고 있는 '쇼와 시대 군부의 폭주 이후 일본은 잘못했지만,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일본은 위대했다'라는 것이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그 근거를 조목조목 내세우고 있다.
사실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왜 이제 와서 자꾸 들추어내냐라는 인식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종종 제기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그 일들이 현재의 정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며, 무시해서도 안 되는 일들이기도 하다.
'보신전쟁'(1868~1869년 일본의 내전)의 예를 저자는 들고 있다. 15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전쟁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해자는 잊기 쉬워도, 피해자의 한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이기에, 역사 문제를 쉽게 묻어버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날조(捏造), 조작(改竄)이라는 말을 일본측, 또는 일뽕들이 한국측에 곧잘 내뱉고는 하는데, 과연 실제 조작을 누가 더 많이 했는지, 그 심각성이 어느 쪽에 더 큰지는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는 점도 강하게 느꼈다.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기록만으로 사실을 뽑아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도.
징용노동자청구권 문제와 위안부합의는 100% 문재앙 정부탓임 국가간 맺은 조약 합의를 지꼴리는대로 파기하는 경우가 어딨음?양국간 법리해석이 다르면 제3국 조정위를 하든가 아니면 ICJ에 가서 해결하는게 제일 깔끔하고 그게 싫으면 지금 질질 끌고 있는 일기업 재산 압류의 현금화를 빨리 마무리짓고 단교단계로 가는게 맞음
단교는 너무 극단적인거 아니냐?
양국국민간 호감도도 없고 정부간 신뢰도도 없고 한국인은 일본인이 싫고 일본인은 한국인이 싫고 역사인식도 다르고 그냥 단교하고 일본거주 한국인들도 싹 다 본국 귀환 시키는고 아예 상종 안하는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음
안그래도 지금 지리적 위치가 위태위타한데 단교하면 짱깨한테 그대로 먹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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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먹으려고 근대화 시킨건데 이거 좋아하는건 군대가면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좋아하는거랑 동급임
뜯어먹으려고 무려 근대화를 시켜놓은건 좀 대단한듯? 아무것도 안 하고 500년동안 뜯어먹기만 한 나라도 있었는데...
넘나 재밌네요.
한일 돌아댕기며 시민운동하는 사람왈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이사람들조차 인식수준이 제국의위안부 박유하 정도가 진짜 전향적인거라나
박유하 교수가 틀린 말 한 건 없지
나라 전체가 전쟁 배상금으로 덩치 불리는 데 재미붙이고 이를 견제할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도 전무한 시점에서 이미 히로시마 나가사키 버섯구름은 정해진 수순이었지. 메이지 시대의 대성공과 쇼와 시대 전반부의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이 결코 별개가 아닌데 기를 쓰고 분리하려는 행태를 보면 역사를 참 우습게 본다는 생각밖에 안 듬. - dc App
한국은 역사왜곡 안했을거같냐 이미 일제시대 쌀수탈도 구라로 들통난지 오래인데 역사교과서에는 수정도 안하잖아
국가간에 상호이해는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는건데 총리의 사과라든지 일본이 한국에 입장에 맞춰준적은 있었어도 한국이 일본의 입장에 맞춰준적은 없다. 일본 입장에서는 혐한이 안 생기는게 이상한거
한국도 일본 제국주의의 협력자로 활동한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피해자 행새만 하고 있는거보면 동남아나 중국에서 얼머나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도 안간다
일뽕이 많긴 많네 - dc App
이 파딱은 맨날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글 쓴 게 티가 나는데 댓글에 무빙치려고 다는 워딩으로는 객관적인 척함
수탈한 거 자체는 팩트 아님? - dc App
원래 그런거지 인간은 좆같은 동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