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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동을 통보받은 필용이 우연히 과 후배였던 양희가 쓴 연극의 제목을 보고는 매일같이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가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필용과 양희의 과거 이야기를 보여준다. 

 인사이동을 통보받은 필용은 인생이 무겁고 부담스러워지자 다시 예전의 양희를 찾게 된다. 양희는 그가 가질 수 없는 가벼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필용은 양희와의 일방적인 관계가 좋았다. 그는 과장과 거짓말을 섞어 말하지만 양희는 그것을 질문 없이 다 듣고만 있어 주기 때문이다. 이 관계에는 그 어떤 무거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보편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가벼움을 동경하면서도 무거움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필용은 처음 양희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우스워했지만, 바로 그 뒤 그녀의 가벼운 사랑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무거움을 안고 사는 그로서는 그녀의 가벼움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으면서도 매일같이 양희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유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오는 쾌락도 있겠지만, 그녀, 곧 가벼움을 바라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책임과 의무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 삶 속에서 가벼움을 바라지만, 정작 가벼움을 택하기엔 책임과 의무가 너무나 무겁게 꽉 붙잡고 있어서 떼어낼 수가 없다. 그처럼 필용은 양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처럼 가벼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양희를 찾으러 그녀의 고향에 가면서 혼자 말한다.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그러나 이러한 양희에 대한 사랑은 그가 문산에 도착하고서 회의적으로 변한다.
‘양희의 야상에서 나던 냄새는 어쩌면 지하 자취방이나 극장의 퀴퀴한 냄새가 아니라 문산에서 묻어온 양희의 고유한 체취는 아니었을까. 그러자 양희의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태도도 어쩌면 잘못 독해되어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모든 것들이 득의만만하게 생장하고 있는 곳에서 그런 허무가 왔다니, 무기력이 왔다니,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양희의 환경을 비극적으로 본다. 그리고 사랑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그가 보기에 양희는 누구보다도 무거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인 것은 과연 양희도 자신의 처지를 무겁게 여길까?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자신의 처지를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양희와 필용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무거움과 가벼움이란 자신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서부터 시작한다. 

 후에 양희는 그에게 나무나 보고 살라고 말한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양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필용은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기에 그러지 못한다.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인사이동을 통보받은 그는 학부모회에 돌릴 명함부터 걱정하지 않았는가? 

 결국 필용은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양희의 연극에 갔던 그 잠깐들의 시간은 인사팀장이 언급함으로써 너무나 무거워졌다. 그는 말한다. “조심해요, 조심해. 가랑비에도 안 젖게 조심하라고요. 깃털 하나도 어깨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요.” 그 말에 필용은 생각한다. ‘이제는 팔다 팔다 팔 게 없으니까 추억까지 팔아서 어쩌려고. 부끄러웠다.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원래의 자리로.’ 필용은 그러면서 극장에서의 기억을 잊으려 한다. 

 작품에서 필용은 두 번 감기에 걸린다. 양희가 떠났을 때, 더 이상 양희의 연극을 보러 가지 않았을 때. 이때 필용의 환경은 어떤가? 백수 비슷한 유학 준비생 처지이며 영어 점수가 안 나와 미국 대학에는 원서도 못 써봤고 어머니가 한강 변 노점에서 만두와 국수를 팔며 번 돈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두 번째는 권고사직과 다를 바 없는 좌천을 당하고 이제 그의 일은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가 주가 되었으며 까마득한 후배가 영업팀장으로 발령 나는 와중에 자신은 지하에서 그 사무실로, 조명 시설 따위를 손보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간다. 그때 누가 티슈 한 장이라도 주는 순간 필용은 속이 뒤집혀 양희에게로 갔었다. 결국 우리의 삶에는 가벼움도 필요한 것이다. 

 필용은 보편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변 시선에 민감하며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긴다. 결국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무겁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끄러워 말고 나무나 보라고 말한다.


국문학 떡밥에 생각나서 썼다
작품은 의외로 괜찮게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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