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각주를 "박식은 역사 지식의 총체"라고 번역했는데
맥락상 역사 지식은 아니고 경험적 지식이나 박물학적 지식이라는 뜻임
그리스어 historia는 조사나 경험으로 알게 됐다는 뜻이고
18세기 독일어에서도 지금과 달리 historie가 경험적 지식이라는 뜻이 있었다고 함
플리니우스의 Naturalis Historia도 자연사는 틀린 번역이고 박물지가 옳은 번역인 것처럼
한국어에서도 박식이랑 박물학적 지식이 한자도 통하니까 박물학적 지식이라고 번역하는 게 좋았을 듯
한국어에서 역사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라는 뜻인데 칸트의 의도는 전혀 아니지
맥락상 역사 지식은 아니고 경험적 지식이나 박물학적 지식이라는 뜻임
그리스어 historia는 조사나 경험으로 알게 됐다는 뜻이고
18세기 독일어에서도 지금과 달리 historie가 경험적 지식이라는 뜻이 있었다고 함
플리니우스의 Naturalis Historia도 자연사는 틀린 번역이고 박물지가 옳은 번역인 것처럼
한국어에서도 박식이랑 박물학적 지식이 한자도 통하니까 박물학적 지식이라고 번역하는 게 좋았을 듯
한국어에서 역사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라는 뜻인데 칸트의 의도는 전혀 아니지
칸트가 박물학을 정확히 지칭할거면 Natur historie 라고 하지 않았겠음? 없는 단어를 의도와 맥락만 추측하는건 과한 번역이지
그리고 역사지식의 총체라고 했을때 (적어도 칸트를 아는) 그 누구도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문화, Hintergrund 라는 거는 알지
Historie가 경험적 지식으로 쓰였고 사변학문이랑 대비시키면서 말함
그 페이지 옆에 원서 쪽수 표기되어있을텐데 몇쪽임?
A248, V138
원문은 *Gelehrsamkeit ist eigentlich nur der Inbegriff historischer Wissenschaften. Folglich kann nur der Lehrer der geoffenbarten Theologie ein Gottesgelehrter
heißen. Wollte man aber auch den, der im Besitze von Vernunftwissenschaften (Mathematik und Philosophie) ist, einen Gelehrten nennen, obgleich dieses schon der Wortbedeutung (als die jederzeit nur da
sjenige, was man durchaus gelehrt werden muß, und was man also nicht von selbst, durch Vernunft, erfinden kann, zur Gelehrsamkeit zählt) widerstreiten würde: so möchte wohl der Philosoph mit seiner Er
kenntniß Gottes als positiver Wissenschaft eine zu schlechte Figur machen, um sich deshalb einen Gelehrten nennen zu lassen. 네요
잠시만 아카넷 번역 확인해볼게
비사변적이고 경험적인 모든 종류의 지식을 말하는데 저걸 역사로 번역하면 한국어에서는 1)인간에 관한 2)통시적 지식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음
아카넷 백종현 번역에는 "학식 있음이란 본래 단지 역사적[자료적] 지식의 총체를 말하는 것이다. [...] (KpV A248=V138)" 라고 번역되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