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이종훈 교수님 번역본은 먼저 해제 분량이 많이 적음. 본문 앞에 해제가 40페이지 정도 있는 걸로 아는데 그 중에 대부분은 모든 이종훈 교수님의 후설 번역본에 공통으로 있는 해제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정작 『시간의식』에 대한 해설은 매우 짧음. 열 페이지가 채 안 되는 것 같음. 그렇다고 앞의 내용(이종훈 후설 번역본 모두에 공통인 글)이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서광사 이남인ㆍ김태희 교수님 번역본은 『시간의식』에 대한 50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의 상세한 해제가 있음.
애초에 후설 『시간의식』이 꽤 난해한 내용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후설이 새로 단어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으니 상세한 해제가 이 책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음.(물론 서광사 판의 해제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또한 서광사 번역본의 김태희 교수는 후설의 시간의식 분석과 관련한 박사 학위 논문으로도 유명하시기도 하고,(『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필로소픽, 2014) 이남인 교수님도 후설현상학 분야에서 유명하시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종훈 교수님 역에선 a priori를 아프리오리, transzendental을 선험으로 번역하는데, 이 번역은 이전부터 칸트 번역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말이 많았던 번역이기도 하고, 논쟁의 대상이 된 번역어 선택 문제를 별 문제 없는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더라도 저 번역어보다는 이남인ㆍ김태희 번역본의 번역어인 '선험적', '초월론적'이 읽기에도 더 좋은 것 같음;
이 문제는 사실 정말 별 문제가 안 되긴 함. 그러나 후설에 있어서는 "초월(transzendent)", "초월론적(transzendental)" 이라는 번역어가 그의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를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함. 이종훈 교수님은 후설의 현상학을 칸트철학의 아류로 오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후설의 Transzendental‐philosophie를 "선험철학",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를 "선험적 현상학"으로 번역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초월론적-"으로) 번역된 걸 선호하는 사람은 서광사 번역본을 읽으면 됨.
넘나 감사합니다 필독
a priori 를 경험독립적이라 번역하는 건 어떻게 생각함? - dc App
라틴어는 그대로 냅두는게 관례상 맞는거 같음. 칸트도 라틴어 단어 그대로 아프리오리라고 하지 따로 독일어 번역을 시도하진 않잖어
영역본에서도 라틴어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걸로 알고 있음.
선험/초월 이니 아프리오리/선험이니 하는거는 말 그대로 카르텔 이권 다툼일 뿐임. 이남인 교수 서울대잖아?
후설도 칸트적의미에서 아프리오리랑 트랜젠덴탈을 사용하는게 맞음?
칸트랑 같은 의도로 그 어휘를 쓰는게 맞냐는 것. 칸트의 초월철학이라는 개념의 특수성은 두더라도 그게 후설에게도 적용됨?
후설 초월은 칸트 초월이랑 쓰는 의미는 몹시 다름
저 용어들은 원어 그대로 쓰고 주석으로 다는 게 맞다고 봄 너무 지랄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