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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글에서 재현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실수가 좀 있었는데

 

  찰스2세 시기에 중단되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다시 시행됨을 해석하고 평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 리어왕에서 사용된 재현

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그것을  첨엔 "그 재현" 이라고 구분해 놓긴했지만 글의 말미엔 그냥 재현이라고도 했다가 하면서

 

 재현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의미부여로도 본다거나 혹은 고다르의 리어왕에 사용된 모든 재현이 "그 재현"의 맥락에 속한다고 본다

라고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됐음

 

 

전혀 의도된 실수는 아니고 

진지하게 읽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의아한 글의  "사소한 ㅎㅎ"  실수에 대해서 뇌절할말큼 책임감이 강한것도 아니지만

하던 얘기와 맞닿는바가 있어 핑계삼아 언급했음 

 

그러니까 재현이란 혹은 그 어떤것의 이름이라도 이름은 약속이고 약속은 믿음을 전제로 하지

 

가령 고다르가 셰익스피어를 탐구하는 영화를 찍는다고 믿는다면

그의 희곡에 적힌 죽음이나 침묵과 침묵이 아닌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할것이라고 믿는것이기도 하고

 

 그런 믿음속에서 고다르가 어떤 여성을 버지니아란 이름으로 부른다면

 

진취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작가의 글과 삶에 대한 존경의 인식이 있을거라 믿을 수 있을거임

 

그리고 그런 이름으로 불리워진 여성이 극 속에서 성적인 맥락의 대상이 되고 죽음을 집행당하고 타인이 그녀의 죽음을 의식화 한다면

 (물론 그 순간은 버지니아가 아니라 다시 코델리어가 되어있지만) 

 

그럼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단 거고 믿음을 저버린게 아니라면 그건 풍자나 사르카즘인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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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고다르씨는 혹여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이 그림을 품고자는 코델리어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건 부모에 의해 죽어가는 아기 그림임

 

인상적인 그림이라 퍼오긴 했지만 사실 셰익스피어와 고다르 영화와 sound 얘기를 하는 와중에 꼭 필요해서 퍼올만한 그림은

영화 리어왕에서 코델리어가 선고받는 장소의 이미지 두 장정도일거임

 

그러니까 밝은곳에서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말씀을 듣는 장면인데

정장을 갖춰입고 옆으로 긴 의자에 여러사람이 공손하게 전방을 주시하고 앉혀놓음으로 법정을 이미지화하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인물을 카메라의 시점을 다시 거꾸로 돌려 앞에서 코델리어 얼굴을 잡고선 이미지화하고

영화관을 이미지화하는걸 시도함

 


사실 이 장면은 nothing의 thing이 의회,재판임을 다시한번 강조해서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데

다 얘기하자면 너무 길고


Come not between the dragon and his wrath


암튼 그 법정에서 피고가 착석하자 코델리어에게 선고하는 목소리가 읊는게 저 대사인데

저 대사로 사운드와 이름을 구분하는 의도가 드러나는거임



믿음은 항상 필요하다

더 이상 믿음을 공유하기 어려운 이름이 있고 애초에 믿음을 줄 생각없이 부르는 이름이 있을 뿐이지


"아~ 귀찮아라~" (수줍은 미소를 띄며 밝은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