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여기에는 논문으로 적혀있길래... 첫번째 논문 두번째 논문 이렇게 편 나눠져 있음 - dc App
R_Homi(homi1030)2022-07-28 10:01
답글
Im Sommer 1887 war er in sehr niedergedrückter Stimmung und schrieb dann recht plötzlich (zwischen dem 10. und 30. Juli) die drei Abhandlungen der Genealogie, wobei er allerdings auf frühere Aufzeichn
ungen zurückgriff. Er ließ es auf eigene Kosten beim Verlag C. G. Naumann in Leipzig drucken und las gemeinsam mit Heinrich Köselitz Korrektur, wobei noch einige Änderungen vorgenommen wurden. In eine
Google 번역: 1887년 여름에 그는 매우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가 갑자기(7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족보 에 관한 세 개의 논문을 썼습니다. 그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C.G. 나우만 출판사에서 자비로 인쇄하고 하인리히 쾨셀리츠 와 함께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교정했습니다. 이 책은 1887년 11월에 600부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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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아예 (코를 막으면서) 이런 지시어까지 있던데 ㅋㅋ - dc App
니체가 그렇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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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가 떨리네 글을 왜 이렇게 쓸까
푸코 들뢰즈 글 보면 더하지 않나? 푸코 은유적인 표현들 보면 학술선지 의심이 드는데 ㅋㅋ 말과사물 초입만 읽어봤는데 이딴게 책이라고? 생각함
둘 다 안읽어봤고 푸코는 곧 감시와 처벌 읽을 예정. 근데 푸코랑 들뢰즈면 나름 현대 철학자인데도 그렇게 쓴다니... 외국에서는 논문 쓰기의 분위기가 다른가 - dc App
파울 레(Paul Ludwig Carl Heinrich Rée) 의 저술 『도덕 감정의 기원(Der Ursprung der moralischen Empfindungen, 1877)』에 대한 '논박서'인데, 논문으로 제출한 저술은 아닌 걸로 앎.
그래? 여기에는 논문으로 적혀있길래... 첫번째 논문 두번째 논문 이렇게 편 나눠져 있음 - dc App
Im Sommer 1887 war er in sehr niedergedrückter Stimmung und schrieb dann recht plötzlich (zwischen dem 10. und 30. Juli) die drei Abhandlungen der Genealogie, wobei er allerdings auf frühere Aufzeichn
ungen zurückgriff. Er ließ es auf eigene Kosten beim Verlag C. G. Naumann in Leipzig drucken und las gemeinsam mit Heinrich Köselitz Korrektur, wobei noch einige Änderungen vorgenommen wurden. In eine
r Auflage von 600 Exemplaren erschien das Buch im November 1887.
Google 번역: 1887년 여름에 그는 매우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가 갑자기(7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족보 에 관한 세 개의 논문을 썼습니다. 그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C.G. 나우만 출판사에서 자비로 인쇄하고 하인리히 쾨셀리츠 와 함께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교정했습니다. 이 책은 1887년 11월에 600부로 출판되었습니다.
독일어 위키피디아긴 한데
학회에 제출한게 아니구나. 그럼 이해되네... - dc App
키배 댓글이라고 보면 됨
에코옹은 논문은 추리소설처럼 써야한다고 하셨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