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아이돌론>에서 하야시 마리코가 제시한 것인데, 흥미로워서 정리해 봄.
1단계: 분위기 비평 시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나만 아는 골목길 단골 다방. 문학가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무언가 논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살롱. 그것이 초기 무라카미 작품=하루키 랜드의 이미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낙서장에 펠트펜으로 휘갈겨 쓴 듯한 느낌의 비평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하루키 랜드의 모습이 완전히 변모한 다음에도 그 풍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기 하루키(비평)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골목길 재즈 카페 같은 느낌? 본격적인 작품론보다는, 문체나 감수성 같은 '분위기'의 매력을 논하는 글이 주를 이뤘음.
2단계: 퍼즐을 풀어보자. <양을 쫓는 모험>, <노르웨이의 숲>(예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랜드>, <댄스 댄스 댄스>
"1982년, 개점 3년째를 맞이한 하루키 랜드는 『양을 쫓는 모험』으로 그 규모를 확대해 신장개업을 합니다. 이야기적인 요소가 풍부해진 것을 보고 단골손님들은 ‘비약적 발전’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새로 단장한 하루키 랜드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인테리어 소품이 준비되어 있었고, 가게 안에는 개점 때부터 쭉 있었던 소품 외에 여러 가지 새로운 게임기가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새 손님을 대거 불러들였지만, 개점 당시의 오붓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단골손님 중에서는 ‘요즘 가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대지’ 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고 발을 돌리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2단계는 <양을 쫓는 모험> 출간부터 시작됨. 보통 제대로 된 서사가 있는 하루키의 첫 번째 작품을 <양을 쫓는 모험>이라고 하는데, 매력적인 서사와 함께 산재한 수수께끼가 비평가를 '해독'으로 이끌었음. 저자는 이를 '다방'에서 '오락실'로의 확장으로 비유함.
"게임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손님들은 냅킨 한 장부터 테이블 다리에 이르기까지 하루키 랜드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3단계: '게임 도사'가 되어보자.
"1990년대 들어 하루키 랜드는 새로운 손님들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합니다. 혈색 나쁜 문학청년들과는 정반대의 사람들. 반바지 차림의 게이머들입니다."
"플레이어에게는 그나마 지조가 남아 있어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는 정도에서 해석을 멈춥니다. 그러나 게이머에게는 흰색과 검은색밖에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낼 때까지 게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게이머에게는 게임 그 자체가 목적이고 전후 사정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비평가는 <하루키를 읽는 법>이 번역되기도 한 하사이 쓰바키와 구와 마사토. 이들은 작가에 관한 온갖 사실을 수집해 수수께끼 풀이를 완수하고자 함. 저자는 이들을 "그러고 나서 ‘데릭 하트필드’의 모델은 누구인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의 유래는 무엇인가와 같은 하찮은 것들(그 어떤 유용성도 없는)에 대해 신나게 추리를 발표합니다."라며 비판적으로 평가함. 한편 저자에 대한 하사이 쓰바키, 구와 마사토의 반론:
4단계: 나도 공략본을 써보자. <태엽 감는 새>, <언더그라운드>
"본래 『태엽 감는 새』는 게이머 전용으로 개발된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요소가 들어 있는 멀티 엔딩 슈퍼 RPG 시뮬레이션 게임. 마치 ‘어디 한번 이것도 풀어봐라!’라는 듯이 복잡다단하게 준비된 많은 ‘수수께끼’들."
"더 이상 비평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공략본들. 신인류 원조 게이머들의 광기는 보통 수준을 넘어섭니다. 1990년 전후를 시작으로 하루키론의 출판 속도가 해마다 빨라져간 것은 바로 이 ‘비평의 공략본화’가 초래한 결과가 아닐까요?"
수많은 수수께끼로 가득 찬 <태엽감는새>는 이런 게이머들을 더욱 자극했고, 결국 '비평'을 넘어 '공략'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됨. 이런 비정상적인 열기의 원인은, 저자에 따르면 80~90년대에 대량으로 수입되었지만 적용 대상이 마땅치 않았던 포스트구조주의(모더니즘) 담론의 배출구로서 하루키 작품이 탁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한편 저자는 <언더그라운드>를 기점으로 하루키가 '게임성'에서 벗어나 초기의 '다방적 소박함'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이건 아마 빗나간 것 같음. <해변의 카프카>, <1Q84>, <색채가 없는...><기사단장 죽이기>가 이어진 것을 보면. 아니, 어쩌면 저자의 분석이 맞은 걸까? 이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음... 아무튼 '다방'과 '오락실'이라는 장소론을 활용한 재미있는 정리였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