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년 전쯤이었나. 도서관에 가면 항상 그 젊은 여자를 볼 수가 있었어. 

  평일 한낮에 도서관에 있었으니 직장인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무튼 그 여자는    

  반듯하게 자른 단발머리에 붉은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티셔츠와 청바지가 무척 잘 어울렸어. 

  얼굴이 무척 예뻤어. 얼굴이 예쁘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난 못생긴 여자들은 기억 못하거든.

  이것은 여자들이 가난뱅이 남자들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야.  


  그 여자가 주로 읽은 책은 세계문학 관련 책이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예쁜 얼굴보다 더 기억하고 있는 한 가지는 책을 읽는 그 여자의 자세였어.

  그 여자는 언제나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 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책을 읽더라. 

  책 몇 권을 독서대 삼아 뒤에 받쳐놓고 읽었던 걸로 기억해.  

  보통 허리나 어깨를 약간 숙인 채 읽을 법도 한데 항상 정자세였어. 

  그것은 군대에서의 점오시간에서의 부동과는 거리가 먼. 나름의 깐깐함과 고집 같은 게 느껴지는 자세였어. 

  화장실에 잠깐 다녀와서도 또 그 자세로 책을 읽었어. 순간 내 머릿속엔 단련, 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지.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한 천일의 연습을 단이라고 하고 만일의 연습을 련이라고 한 그것 말이야. 

  오랫동안 활자와 같이 호흡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자세, 반듯하게 자른 머리만큼이나 

  반듯하게 앉아서 읽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어느 날 그 여자는 도서관에 안 보이더라. 그때 난 구해서 갖고 싶지만 출판되지 않는, 단종된 책 소식을 접한 것처럼 못내 아쉬웠어.

  이를 테면 학원사판 김후란 역 금각사, 같은 책 말이야. 

  세월 가도 읽을 수 없는 책,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야.